13승으로 사이영, MLB 새 역사 썼던 킹 펠릭스··· 통산 169승으로 HOF 문턱도 넘을까

2025-01-06

2010년 시애틀 선발투수 펠릭스 에르난데스는 메이저리그(MLB)의 한 패러다임을 바꿨다. 불과 13승(12패)으로 아메리칸 사이영상을 차지하면서다.

선발투수가 불과 13승으로 사이영상을 차지한 건 1981년 LA 다저스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외에 전례가 없었다. 당시 발렌수엘라의 13승이 톰 시버의 14승에 이은 다승 2위 기록이라는 걸 감안하면, 애초에 두 사례는 경우가 달랐다.

에르난데스는 승수에서 21승(7패)의 C.C. 사바시아, 19승(6패)의 데이비스 프라이스 등에게 밀렸지만 다른 기록에서 압도했다. 평균자책점 2.27로 1위를 차지했고, FIP(수비무관 평균자책점)이나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 같은 세이버메트릭스 수치도 월등했다. 에르난데스가 그해 249.2이닝이나 던지고도 13승밖에 올리지 못한 건 시애틀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다. 61승 101패로 아메리칸리그 꼴찌였고, 에르난데스 등판 경기에서 평균 득점 지원은 3.1점에 그쳤다.

에르난데스가 사이영상을 차지하면서 이후 수상의 평가 잣대 또한 달라졌다. 에르난데스 이전 사이영상 선발 투수의 평균 승수가 21.4승인데, 에르난데스 이후는 17.8승(2020년 코로나19 단축 시즌 제외)이다. 에르난데스보다 적은 승수로 사이영상을 차지한 사례도 3차례나 나왔다. 제이컵 디그롬이 2018, 2019시즌 각각 10승과 11승으로 사이영상을 2연패했다. 코빈 번스는 2021년 11승으로 상을 받았다. 팀 전력의 영향을 크게 받는 다승은 사이영상 투표에 이제 큰 평가요소가 되지 못한다. 오로지 개인 역량과 성과에 초점을 맞추는 게 최근의 트렌드다.

그런 에르난데스가 올해 처음으로 명예의전당 후보 자격을 얻었다. 투표는 이미 마감됐고, 발표만 남은 가운데 2010년 사이영상 때와 같은 논란이 일고 있다.

에르난데스는 시애틀 한 팀에서만 15년간 활약했다. 2005시즌 19세 나이로 데뷔해 영광의 20대를 보냈지만, 부상 때문에 전성기가 너무 빠르게 끝났다. 에르난데스는 2019년 은퇴까지 15년 통산 평균자책점 3.42에 169승(136패)밖에 거두지 못했다. 명예의전당 투수들의 평균 통산 승수는 237승이다.

부족한 누적 기록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에르난데스는 통산 2727.2이닝을 던졌다. 3000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명예의전당에 오른 선발투수는 불과 13명이고, 이른바 ‘현대 야구’ 시대를 기준으로 하면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로이 할러데이, 샌디 쿠팩스 등 8명 뿐이다. 리그 역사에서 손꼽히는 투수들이다. 당장 에르난데스 본인도 누적 기록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다. 2021년 그가 은퇴 복귀하고 볼티모어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을 때 기자들이 이유를 묻자 에르난데스는 “명예의전당에 들고 싶어서다.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몇 가지 숫자가 모자라다”고 답했다. 아쉽게도 에르난데스는 볼티모어에서 1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부족한 누적 기록을 추가하지도 못했다.

에르난데스와 유사한 사례로 꼽히는 요한 산타나는 2018년 첫 후보로 올랐지만 득표율 2.4%로 바로 탈락했다. 명예의전당은 득표율 5%에 미달하면 후보 자격을 잃는다. 산타나 역시 부상으로 전성기가 짧았고, 12년 통산 2025.2이닝 139승(78패) 평균자책점 3.20으로 2012년 은퇴했다.

그러나 에르난데스가 명예의전당에 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없지 않다. USA투데이의 스티브 가드너는 “전성기 시절 에르난데스는 최고의 투수였다”며 그에게 투표했다고 밝혔다. 그는 나란히 올해 첫 투표 대상에 올랐고, 명예의전당 입성이 확실시되는 사바시아와 에르난데스를 비교하며 “꼭 이겨야 하는 한 경기를 해야 한다면 나는 사바시아가 아닌 에르난데스를 선발로 내겠다”고도 했다. 누적 기록은 사바시아가 월등하지만, 최고점에서 기량은 에르난데스가 낫다는 이야기다.

MLB닷컴의 테오 데로사도 비슷한 논지다. 그는 에르난데스가 엄청난 전성기를 보냈고, 2010년 같은 경우 역사에 남을만한 압도적인 시즌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누적 성적도 아쉬움은 남을지언정 합격선에 아예 미달할 수준은 아니라고 봤다. 에르난데스가 흔치 않은 ‘원 클럽 맨’으로 남았다는 데에도 가산점을 줬다.

오는 22일 명예의전당 투표 결과가 나온다. 에르난데스가 헌액 ‘합격선’인 75%를 넘길 수 있을지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일단 후보 자격을 유지한 채 이후 기회를 노려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동시에 언젠가 에르난데스가 명예의전당에 입성한다면, 2010년 사이영상이 그랬듯 명예의전당 평가 잣대를 바꾸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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