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비법] 법원 "신탁사도 책임 준공 의무" 첫 판단…부동산 PF의 굴곡

2025-09-16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란 프로젝트의 사업성과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미래 현금흐름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말한다. 채무자의 신용도나 담보가치를 기초로 대출이 이뤄지는 기존의 금융과는 다르다. 흔히 말하는 부동산 PF란 프로젝트 파이낸싱 중 하나로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투자 대상으로 하는 금융 기법을 말한다.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발생할 미래 현금흐름, 즉 분양 수입, 임대 수익 등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부동산 PF에 관심이 많다. 언론이 매일 같이 부동산 PF 현황을 보도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부동산 PF가 왜 등장했으며, 최근 논의하는 주제는 무엇인지 보려고 한다.

IMF 이전에는 건설사가 부동산 건설사업의 모든 것을 수행했다. 시행, 시공을 모두 담당했고 은행으로부터 직접 자금을 대출 받았다. 그러다가 IMF 위기에서 추진력을 잃고 사업이 좌초되거나 과도한 차입으로 연쇄 부도 사태가 발생하자, 각자 역할을 나누고 금융 구조를 고도화함으로써 리스크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시행과 시공을 분리한다. 시행사는 형식상 사업 주체로서 토지를 확보하고 인허가를 취득하며, 분양을 주관하는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업무 내용에서 보듯 시행사의 업무는 토지 소유자, 지자체, 민원인 등 여러 관계자의 입장을 조율하면서 전체 사업을 주관하는 것이므로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시행사 관계자에게는 기획력, 법률 및 재무에 대한 이해, 협상력, 리더십, 이에 더 나아가 윤리적 소양 등과 같이 엄청난 능력을 요구하게 된다. 모두 그런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니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나다 보면 간혹 엄청난 편차와 괴리감을 느끼곤 한다.

시공사는 당연하게도 건설사가 맡는다. 더 나아가 완공을 약속하는 책임 준공 약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인데, 부동산 PF에서 대주단이 요구하거나 분양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수분양자 등(소비자)은 특수목적법인에 불과한 시행사가 아니라 대형 건설사인 시공사가 책임지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대형 건설사가 책임 준공 약정을 하고 이를 광고하면 수분양자 모집이 수월해지는 경향이 있다.

다음으로 건설사가 직접 자금을 차입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PF 금융 기법을 이용하는 것이 있다. 시행사는 금융기관 등 ‘대주’로부터 자금을 대출 받는다. 그리고 대출금에 대한 담보로 ‘신탁사’에 토지 소유권, 인허가권, 기타 계약상 지위를 위탁한다. 시공사는 시행사가 확보한 자금으로 공사를 수행하되,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적 사유가 아니라면 어떠한 경우에도 예정된 기간 내에 준공을 약속하는 책임 준공 약정을 한다.

원칙적으로 PF는 사업의 수익성과 현금흐름에 기초해 대출을 실행하며 상환 재원도 분양 수입금 등 사업 자체의 현금흐름으로 충당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사업주의 신용이나 자산은 중요하지 않으므로 특수목적법인이 사업을 주관하도록 하며, 대주단은 우선수익권으로 대출금을 회수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는 다르다. 시행사와 개인에게 연대 보증을 요구하고, 시공사에게는 책임 준공·지급보증·채무 인수 등을 요구함으로써 인적·물적 담보를 모두 확보한다. 그러다 보니 사업성을 면밀히 분석하지 않고 부동산 PF를 남발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부동산 PF 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한 차례 위기를 겪었다. 2011년경 미분양 물량이 증가하고 건설사 신용도가 하락하자, 적극적으로 부동산 PF를 집행한 저축은행에서 뱅크런과 연쇄도산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다가 2013년 이후 저금리, 유동성 증가 등으로 부동산 시장이 유례 없는 호황을 맞으면서 저축은행 사태는 잊히고 부동산 PF 시장은 대호황을 맞이했다. 시중은행, 증권사 등이 부동산 PF에 적극적으로 진입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나 모두가 익히 알듯이 2022년 이후 부동산 PF 시장은 예전만 못하다. 고금리로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했으나, 불경기의 장기화로 시장에서는 비싸진 부동산을 떠안을 여유가 부족해졌다. 특히 부동산 PF의 기반을 떠받치고 있는 건설사의 부실화가 심각하다. 일단 건물이 올라가야 부동산 PF를 기대할 수 있는데, 지방 중소 건설사를 시작으로 부실화의 정도가 너무 심하니 부동산 PF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건설사가 넘어지면 다음으로 누가 사업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까? 계약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신탁사에 공이 넘어온 분위기다. 신탁사는 ‘관리형 토지신탁 계약’이라고 해서 토지 소유권뿐만 아니라 인허가 명의, 공사도급계약 명의 등을 이전받고 실질적인 사업 주체로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진행해 왔다. 이 경우 신탁사는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다른 방식에 비해 높은 수수료 수입을 얻을 수 있으므로 환영했고, 대주단이나 시공사도 영세한 시행사가 아닌 신탁사가 사업을 주관한다는 측면에서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

부동산 호황기에 절찬리에 판매한 관리형 토지신탁 방식은 불경기에 이르자 신탁사에 화살이 돼 돌아왔다. 관리형 토지신탁 방식에 따르면 신탁사는 책임 준공 약정에 따라 책임 준공 의무를 이행하거나 미이행 시 대출금 상환의 의무를 부담한다. 그런데 건설사 부실화로 신탁사만이 남은 상황에서 신탁사는 그 의무를 실제로 전부 이행해야 하는 것인지가 쟁점이 됐다.

계약으로 정했다면 당연히 책임 준공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신탁사도 나름의 입장이 있다. 부동산PF는 시행사, 시공사, 대주단, 신탁사 등 여러 관계자가 긴밀하게 협의해 진행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대주단 역시 대출금 집행의 적정성을 검증해야 하고, 실제로 여러 계약은 시행사의 사업비 지출을 위해 대주단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한다. 대주단은 자금 집행 요청서, 사업 수지 분석표 등을 통해 대출금 인출 및 집행의 적정성을 검토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하지 않았다면 신탁사에 책임 준공 의무로서 대출금 전액 상환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주요 주장이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최근 판결에서 신탁사의 주장을 배척하고 대주단 청구를 인용했다. 그 이유로 신탁사의 책임 준공 제도는 현재 PF 금융이나 개발 사업에서 보편적으로 이뤄진 거래관행이고, 신탁사는 책임 준공 약정이 포함된 신탁업무의 보수로 고액의 수수료 수입을 얻었다는 등의 사정을 들었다.

대법원 판결이 있기 전까지 책임 준공 확약 불이행에 따른 신탁사의 책임은 계속 논란이 될 것이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파급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전에는 누구도 문제 삼지 않고 당연하게 여긴 조건이 큰 문제가 되는 모습을 보니, 부동산 개발사업의 변동성과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낀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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