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병이었던 아버지를 폭행해 숨지게 한 30대 남성의 항소심 재판에서 판사는 "아버지를 한 남자로서 되돌아보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고 충고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조현병이었던 아버지를 나무 막대기 등으로 무차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존속학대치사 등)로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A씨(31)의 항소심 재판이 열렸다.
법정에 선 A씨는 정말 힘들게 살아왔다면서 "정말 아버지에게 큰 피해를 주려고 마음먹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울먹였다. 이어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아버지를 보살피는 마음이 처음에 비해서 부족해지지 않았나 돌이켜본다"며 고개를 숙였다.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 이은혜 부장판사는 고개 숙인 A씨에게 조심스레 충고했다.
이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왜 이 사건에 이르게 됐을까를 생각해보면 '나는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아무것도 받은 게 없는데 나이 들어 짐만 된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아버지에게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을 것 같다"며 "부모니까 떨쳐낼 수 없고, 미워할 수 없으면서도 남보다도 못한 부모에게 억울한 마음도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좋은 세상을 제대로 즐기고 누려보지도 못한 채 아팠던 부친의 인생도 굉장히 불행한 것"이라며 "보호자로서가 아니라 한 남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되돌아본다면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조언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2022년 1월부터 양양에서 조현병을 앓던 아버지 B씨(71)와 단둘이 거주하며 일용직과 택배기사 일을 했다.
고된 일로 인한 스트레스에 더해 B씨가 대소변을 본 뒤 변기 물을 내리지 않거나, 대변이 남아있는 변기 물로 용변 뒤처리를 하는 등 조현병 증세가 날로 심해지자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A씨는 2023년 5월부터 그해 12월까지 B씨가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반말 등 폭언을 하고, 회초리나 주먹 등으로 B씨를 지속해서 폭행했다.
올해 1월에도 B씨가 대변을 보고 변기 물을 내리지 않자 B씨를 나무라며 온몸을 나무 막대기로 때리거나 찌르고, 발로 걷어차는 등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결국 척추뼈와 갈비뼈가 골절되는 등 심하게 다친 B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속초지원은 "윤리적 용인이 어려울 정도로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면서도 "조현병을 앓는 아버지를 장기간 홀로 모시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이고, 딱히 도움을 청하거나 기댈 곳이 없었던 피고인에게 모든 책임을 묻기에는 다소 가혹한 측면이 있다"며 징역 6년을 선고했다.
1심에서 징역 25년을 구형했던 검찰의 항소로 사건을 다시 살핀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열린 선고공판에서 "범행의 패륜성과 결과의 중대성 등을 보면 죄책이 무겁고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A씨가 낸 반성문이나 그의 누나가 쓴 탄원서로 미루어보아 A씨가 가혹한 가정환경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은 사정, A씨가 아버지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에 깊이 괴로워하는 점을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했다.
이에 검찰이 낸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