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기에는 소련 감시 최전선
핵 조기경보 레이더 있는 곳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정상회담을 하는 장소는 알래스카 최대 도시 앵커리지에 자리한 엘먼도프-리처드슨 기지다.
이곳은 2010년 엘멘도르프 공군기지와 리처드슨 육군기지를 통합해 탄생한 미군의 대표적 육·공군 합동기지로 면적은 250㎢에 달한다. 서울시 전체 크기(605㎢)의 약 40%에 해당하는 규모다. 기지 내 거주 인구는 3만명이 넘는데 이는 앵커리지 전체 인구의 약 10%에 해당한다고 BBC는 전했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최전선으로 기능했으며 현재도 북미 방공작전과 전략적 대응의 핵심 거점으로 활용된다. 특히 북극권과 인도·태평양 지역을 아우르는 미국 방위 전략에서 중요한 전초기지로 꼽힌다.
기지 측 설명에 따르면 엘먼도프-리처드슨 기지는 수십 년간 각종 항공 전력을 배치해 구소련과 러시아의 군사 활동을 감시·대응해왔다. 현재도 러시아의 핵 발사 가능성을 조기에 포착하기 위해 경보 레이더를 가동 중이다. ‘북미의 영공을 수호한다’(Top Cover for North America)는 이 기지의 표어다. 세계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로 꼽히는 F-22를 비롯한 미군 핵심 전투 비행대대가 이곳에 상시 주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임기 때인 이 기지를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의 마지막 개척지에서 미국의 최전방 방어선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도 이 기지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인근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소련 조종사와 군인, 민간인들의 묘지가 자리한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 전후로 알래스카 인근 소련군 추모 묘지를 찾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조종사·군인과 민간인들을 기릴 예정이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정책 보좌관은 14일 브리핑에서 “이번 회담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 근처에서 열리며, 양국의 군사적 형제애를 상기시키고 2차대전 승리 80주년에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정상회담 계획은 예정일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발표됐다. 개최지가 미국 알래스카주라는 사실만 공개되면서 양국 실무진은 적합한 회담장을 급히 물색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지는 1971년 9월 27일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과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회동 장소이기도 했다. 히로히토 일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유럽 순방에 나서는 길에 앵커리지에 들렀고 닉슨 대통령이 현지에서 직접 영접했다.
알래스카가 미국 외교 무대의 중심에 선 마지막 사례는 2021년 3월이었다.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새 외교·안보팀이 취임 후 처음으로 중국 측 고위 외교 사절단과 앵커리지에서 회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