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중국은 온통 '전승절'에 모든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전승절은 말 그대로 전쟁에서 승리한 날이라는 뜻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 연합국으로 참전한 나라가 연합국의 승리를 기념하거나 자국에 의미있는 승리를 거뒀다고 판단하는 날에 의미를 부여해 지정하죠. 구 소련은 나치 독일의 마지막 지도자로 카를 되니츠가 항복한 1945년 5월 9일을 기념하는데, 올해 80주년 행사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이 참석했습니다. 중국도 올해 9월 3일 전승절 8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치를 예정입니다.
중국 전승절의 정식 명칭은 '중국인민항일전쟁 승리기념일'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정부가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포츠담 선언과 무조건 항복을 수락한다고 선언했죠. 일본 정부는 그해 9월 2일 중국인민항일전쟁에 항복한다는 문서에 서명했고, 다음날 당시 국민당 정부는 결의문을 통해 9월 3일을 전승절로 지정했습니다.
중국은 기념일의 5, 10년 단위로, 이른바 '정주년'에 성대한 행사를 치르는데요. 지난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참여했던 것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주요 국가의 지도자들을 대거 초청한 행사를 개최했는데, 올해 80주년은 그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관련 조짐은 중국 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전승절 열병식에 참여하는 부대의 군인들은 비밀리에 모처에 모여 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간혹 중국중앙(CC)TV를 비롯한 중국 매체에 이들이 훈련하는 모습이 전해지는데, 수많은 군인들의 팔과 다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딱 맞게 움직이는 모습에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지난 9일 밤 부터 10일 새벽까지 이들은 톈안먼 광장 일대에서 첫 예행연습을 실시했는데요.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에 따르면 2만 2000여명이 참석했다고 전해집니다. 베이징시 당국은 9일 오후 6시부터 톈안먼을 중심으로 한 시내 중심 곳곳의 교통을 통제했습니다. 경찰들이 철제 바리케이드로 곳곳의 출입을 완전 통제했고 지하철 역도 일부 폐쇄됐습니다. 시내버스 노선 65개가 우회 운행하거나 무정차 통과했고, 시내 일부 공원도 일찍 문을 닫게 했죠.
전승절에는 군인들의 열병 행사와 함께 다양한 첨단 무기들도 공개됩니다. 지난 2015년에는 J-15 전투기, H-6K 폭격기, Z-10 공격 헬리콥터 등 당시 첨단 무기와 신형 무기를 선보였습니다. 당시 인민해방국 약 1만2000명 외에도 200대의 항공기와 미사일 등도 대거 배치됐습니다.
중국은 이후 201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군사 퍼레이드를 개최했을 뿐이라 그동안 개발하고 있는 많은 첨단 무기들이 이번에 공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근 중국은 언론을 통해 첨단 무기를 슬쩍 노출하고 있는데요. 지난 12일 관영통신 신화사 등에 'DF-100 초음속 순항 미사일 발사 영상의 희귀한 공개'라는 제목의 중국 인민해방군 다큐멘터리 5회 편을 방영했죠. 여기에서 '항공모함 킬러'로 알려진 DF(둥펑)-100 극초음속 순항 미사일이 2분 가량 공개됐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2019년 인민해방군 로켓부대가 DF-100 영상을 2초간 비춘 적이 있지만 추후 삭제했을 정도로 보 유지에 철저했는데, 이번에 장시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DF-100은 사거리 3000~4000km, 마하 4 속도에 관성 항법과 베이더우 위성 위치 추적장치를 결합해 40분 만에 목표물 타격이 가능하다고 하는데요. 최대 사거리를 감안하면 대만, 한국, 일본은 물론 오키나와와 괌의 미군기지에도 도달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DF-100 외에도 지난달 24일에는 중국이 미국 공군의 첨단 스텔스기인 F-35, F-22에 맞선 5세대 스텔스 전투기 J-35를 공군 버전과 항공모함 기반의 해군 버전으로 나눠 개발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J-35가 중국 항공 경찰-600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J-15T 전투기, J-15D 전자전 항공기 등 인민해방군 해군 항공대와 함께 비행하는 사진이 공개된 것인데요. 지난 6일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스텔스기의 이미지가 온라인 상에서 확산되기도 했는데요. 중국 매체들은 이를 두고 6세대 스텔스기의 이미지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전승절 예행 연습에서는 DF-5C 대륙간탄도미사일, JL-3 잠수함발사 미사일, YJ-21 극초음속 미사일 등도 등장했는데요. SCMP는 이번 열병식에 무인로봇·드론·전자전·사이버·정보지원부대 부대가 공식 데뷔를 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전승절을 앞두고 일제 침략기를 다룬 ‘항일 영화’도 잇따라 개봉하고 있습니다. 중일전쟁 당시 일제가 중화민국 수도였던 난징에서 30만 명이 넘는 민간인을 죽였던 난징대학살을 다룬 영화 ‘난징사진관’이 대표적인데요. 당시 피난소였던 한 사진관에서 일제 학살을 입증할 사진을 확보한 중국인들이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난징사진관은 개봉 이후 17일만에 약 22억 위안(약 (약 4260억 원)의 수입을 올렸는데요. 여름철(6~8월) 성수기에 중국에서 상영된 영화 중 역대 최고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올해 춘절(음력 설) 연휴 개봉해 전 세계 박스오피스 5위까지 오른 애니메이션 ‘너자2’ 이후 10억 위안(약 1936억 원) 넘는 수입을 올린 첫 작품이었죠.
지난 8일에는 ‘둥지다오’가 개봉을 했는데요.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중국 어부들이 목숨을 걸고 영국군 전쟁 포로를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의 일제 항전 역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산허웨이정'도 15일 상영을 시작합니다. 당초 개봉 시점이 7월 31일로 예상됐던 영화 ‘731’은 만주사변 기념일(9월 18일)을 맞춰 정식 상영하기로 했습니다. 일본군 731부대의 만행을 고발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영화들로 인해 일본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나아가 혐오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달 31일 장쑤성 쑤저우의 한 지하철역에선 아이와 함께 있던 일본인 여성이 중국인 남성에게 돌을 맞아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주중대사관은 반일 감정 고조에 특히 주의하라고 공지했을 정도입니다.

전승절 행사가 다가올수록 베이징 내 긴장감은 점점 고조되고 있습니다. 주요 행사를 앞두고 안전 사고 발생으로 인해 관심이 분산되는 것을 막기 위함인데요. 최근 시내 곳곳에 배치된 경찰 수가 늘어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미 베이징 일대에는 드론 비행이 금지된 상태입니다.
베이징시 교통국은 오는 20일부터 31까지 차량 홀짝제를 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대기 오염을 줄이고 교통 혼잡을 완화하기 위해 시행하는 임시 조치라는 설명이지만 전승절을 준비한다고 해석됩니다. 아무래도 전 세계에 전승절 행사를 보여줘야 하다 보니 맑은 공기의 파란 하늘을 보여주고 싶을테죠. 베이징의 5환 이내에선 0시부터 3시까지를 제외하면 전기차, 응급차량(소방차·구급차·경찰차 등), 공공버스·택시·렌터카 등 특수 목적 차량, 외교 차량 등의 운행만 가능합니다.
전승절 행사의 메인인 톈안먼 광장과 주변 지역은 오는 20일부터 나흘간 폐쇄하기로 했는데요. 아울러 15~17일 톈안먼 광장 동·서로, 인민대회당 서로 등 일부 도로도 통제한다고 밝혔습니다. 내달 3일 전승절 80주년 행사가 열릴 때까지는 당분간 베이징시 도심 곳곳에 통제가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톈안먼 주변의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 기업들도 행사 며칠 전부터 당일까지 출근을 하지 말라는 공지가 내려지기도 했다고 할 정도인데요. 과연 올해 전승절 행사에 우리나라에선 누가 국가를 대표해서 참여할지 공금합니다. 중국은 이미 이재명 대통령을 초청했지만 사실상 불참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죠. 10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올랐던 톈안먼 성루에 대한민국을 대표해 누가 오르느냐에 따라 이재명 정부의 대중국 외교가 얼마나 순탄할지도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광수 특파원의 ‘중알중알’은 ‘중국을 알고 싶어? 중국을 알려줄게!’의 줄임말입니다. 중국에서 발생한 뉴스의 배경과 원인을 이해할 수 있도록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중국의 특성을 쉽게 전달해 드립니다. 구독을 하시면 유익한 중국 정보를 전달받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