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나 저 마음 알아’라고 말하는 일”

2025-09-03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학의 한 터전을 일궈내는 이들을 만나 왜 문학을 하는지 듣는다.

“소설은 언제나 현실보다 좋았다. 엄마한테 맞을까 봐 시장으로 도망가던 날은 동화 속에 나오는 모험을 떠나는 것 같아 흥분되었다. 나는 진짜인 내 삶보다 소설 속 가짜가 좋았다. 그게 내겐 어리둥절한 삶을 소화하는 방식이었다.”(‘오춘실의 사계절’ 중)

가짜의 세계로 향하던 소녀는 어른이 되어 16년째 온라인 서점에서 소설을 파는 MD가 된다. 알라딘에서 한국문학을 담당하는 김효선의 얘기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알라딘 본사에서 최근 발표한 에세이 <오춘실의 사계절>을 들고 그를 만났다.

2010년 입사 초기엔 리뷰를 많이 썼다. ‘편집장의 선택’이라는 추천 도서 코너는 입사하자마자 썼다. 첫 리뷰는 당시 출판사들이 앞다퉈 내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였다. 작가 인터뷰도 했다. 2013년 소설집 <달에게>를 낸 신경숙 작가를 만난 일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업무에 가장 큰 변화를 준 건 2014년부터 실시된 도서정가제였다. 온라인 서점들이 해오던 가격 마케팅이 어려워지자 굿즈와 펀딩 등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책을 홍보해야 했다. 최근 알라딘에서는 배수아의 <올빼미의 없음> 리마스터판을 북펀딩했다.

2015년 전후로 젊은 여성 독자들이 유입되며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그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문단 문학’으로 대표되는 한국 문학의 딱딱한 이미지가 젊어지기 시작했다. 2018년 김초엽 작가가 데뷔하면서 한국 소설에 관심을 갖는 여성 독자들이 더 늘어났다”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시장이 확실히 커졌다”고 말했다.

일이란 언제나 어려움을 동반한다. 조직 생활의 어려움으로 알코올 중독이 되고 정신과 약 처방을 받는 다. 이 같은 얘기가 에세이 <오춘실의 사계절>에 담겼다.

책은 그의 어머니 오춘실이 165개월을 근속한 청소부를 그만두고 딸과 함께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는 얘기다. “내 얘기도 책이 돼?”라는 어머니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책 전반엔 삶이 주는 감동이 파도처럼 울렁인다.

“과수원, 식당, 공장, 병원, 목욕탕, 아파트, 학교 등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40년을 일했다”는 오춘실은 “독하니까 먹고 살았쟈!”라며 앙칼지게 말하지만, 사실 하나도 독해 보이지 않는다. 순박하고 귀여운 어머니는 그저 정직하게 삶을 버텨왔을 뿐이다. 그래서 딸도 “없는 집에서도 곱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움과 사랑 후회와 안쓰러움이 뒤섞인 가족 이야기는 웬만한 소설보다 곡절이 짙지만 “요즘은 수영하는 게 제일 즐거와”라며 웃는 오춘실을 보면 다시 눈물이 뚝 그친다.

적나라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 MD는 “초고는 지금 책보다 더 무거운 분위기였다. 편집자께서 좀 더 밝게 수영 얘기를 더 넣자고 해 지금 원고가 나왔다. 한 계절의 이야기 당 2개월 쓰고 3개월은 쉬면서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책은 일종의 치료였다. 그는 “문학은 한이 있어야 쓰는 것 같은데, 나는 지금 한이 없다. 글 쓰면서 다 풀었다”고 말했다.

한은 풀었지만 일은 계속한다. 최근 일로 만난 책은 김초엽의 <양면의 조개껍데기>다. 문학은 어린 시절 알 수 없는 세상에서 그를 버티게 하던 힘이었다. 어른이 되어선 독립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밥벌이가 돼 주었으며, 외면했던 상처를 아물게 하고 묵혀두었던 감정을 풀어내는 통로가 됐다. 문학은 그에게 무엇일까.

“권여선의 소설 ‘안녕 주정뱅이’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봄밤> GV에 갔었다. 객석에서 누가 ‘주인공이 힘내서 술을 끊어야지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먹냐’고 물었다. 그때 생각했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하는 마음, 그것을 알아주는 게 문학이 아닌가. 그냥 ‘술 끊어’라고 말하는 건 문학의 언어가 아닐 거다. 문학은 ‘나 저 마음 알아’라고 말하는 일인 것 같다.”

▼김효선 MD가 일로 만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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