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문화전당, 29일까지 이경옥 ‘함께 그린 가족의 꿈’展

2024-09-26

도자에 ‘역경의 서사’ 새겼더니…더 윤이 난다

46세 도예과 진학한 칠순 그녀

회화 보는 듯 다채로운 色 사용

평면에 다완·찻잔 활용 콜라주

사건과 감정, 비유적으로 구현

“살아보니 가족이 가장 소중해”

도예가인 동생 점찬 씨와 전시

칠순의 이경옥이 24년 전인 마흔 여섯의 이경옥에게 어깨를 토닥인다. “다 잘 될 것이니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그의 위로는 시간을 거슬러 24년 전의 경옥에게 전달되진 못하지만 “소망하는 도예명인이 되고, 자녀들도 자랑스러운 사회인이 될 것”이라는 격한 응원을 보내본다. 24년 후엔 그토록 원하던 도예명인이 되고, 어린 두 딸은 변리사와 교육자가 되고 결혼 후 자녀들을 낳고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는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 펼쳐질 것을 46세의 이경옥은 미처 알지 못하지만, 이제 막 도예의 세계에 첫걸음을 내딛는 마흔 여섯 살의 자신에게 마음을 가득담은 응원을 보낸다.

이경옥은 늦은 나이에 도자예술에 입문했다. 그가 46세 때 대구 가톨릭대 도예과에 진학했다. 결혼 후 승승장구 하던 남편의 사업이 실패하자 한순간에 가난의 굴레에 빠져들었고, 고래등 같은 집은 월세살이로 전락했다. 살길이 막막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46세 때라고 가정경제가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숨 가쁜 상황이 조금은 정리됐고, 그는 앞뒤 따질 겨를 없이 자아 찾기를 시작했다. 아내와 주부가 아닌 인간 이경옥의 꿈을 실현하자고 결심한 것.

남편과 자녀들의 응원을 받으며 수능까지 치르는 도전을 감내하며 도예과에 진학하고 24년이 흐른 지금 그는 도예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박사 3학기 차를 마친 상태다. 그는 현재 도예가이자 대구 가톨릭대학 평생교육원 겸임교수와 수성구 고산평생학습센터와 수성문화원에서 도예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도예가 이경옥이 칠순을 맞아 ‘DREAM OF A FAMILY, DRAWN TOGETHER(함께 그린 가족의 꿈’전을 대덕문화전당에서 열고 있다. 그의 칠순전에는 도예가 이경옥과 그의 두 딸인 배소정과 배민지, 손자 고민재와 김범석, 그리고 남동생인 도예가이자 전 대구미술협회 회장을 역임한 이점찬과 그의 아내 추현주까지 가족이 총 출동했다.

1전시실은 이경옥과 그의 가족들의 작품이, 2전시실엔 이점찬 부부의 작품을 전시했다. 백자 도예 명인인 이점찬은 백자 달항아리를, 도예 명인인 이경옥은 생활도자기부터 도자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반입체 등의 다채로운 도예작품을 출품했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두 딸과 손자 그리고 이점찬의 부인인 추현주는 회화 작품을 걸었다.

도예와 회화 작품 사이에 자녀들의 성장기가 담기 사진들과 작가의 어린시절 가족사진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점찬과 이경옥은 독자적인 도자세계를 펼쳐온 예술가라 이설이 필요 없지만 다른 가족들의 전시 작품도 예사롭지 않다. 그림이 좋아 독학으로 그린 작품들이지만, 예술적인 DNA가 자손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듯 보인다.

가족을 향한 그의 사랑을 가득 담아 칠순기념전으로 가족전을 꾸린 이유에 대해 그는 “살아보니까 제일 소중한 것이 가족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로 대신했다. “가족의 사랑이 제일 위해할뿐더러 삶은 지탱하는 큰 힘이었습니다.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칠순에 가족이 함께하는 전시를 기획하게 됐어요.”

이경옥이 도예를 시작한 것은 동생인 도예가 이점찬의 영향이 컸다. 그의 집 지하실에 이점찬이 작업실을 차렸고, 흙이 가마에서 불을 만나 아름다운 도자기로 환골탈태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도예가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오직 관심사는 패션이었다.

그는 결혼 전 패션디자이너를 꿈꾸었고, 남편은 “결혼하면 대학 공부시켜주겠다”는 약속까지 했었다. 그러나 출산과 육아, 남편의 사업 실패 등으로 꿈은 좌절됐다. 고난이 닥쳤을 때 그는 주저앉기보다 자신을 찾는 일을 시작했다. 40대 중반에 자아를 찾겠다는 결심을 하고 “무엇을 할까?”를 고민했다. 그때부터 잊고 있는 도자예술에 대한 열망을 현실화 하기 시작했다.

이점찬과 이경옥의 외형은 누가 봐도 남매라고 할 정도로 닮아있다. 하지만 도자예술에선 극과 극을 달릴 만큼 서로의 개성이 뚜렷하다. 이점찬이 절제미의 극치인 백자 달항아리를 금박과의 조화로 재해석하며 현대성을 입혔다면, 이경옥은 회화를 방불케 하는 다채로운 색감과 조형적인 요소들로 일상 가까이 다가간다. 다완이나 찻잔, 대형접시 등의 도자들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평면 세라믹에 꼴라주로 올린 이경옥의 작품들이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다.

남매가 각자의 도자예술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로 이경옥은 “제가 도자기를 시작하고 한참 공부할 때 한 번도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는 섭섭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저는 저만의 창작세계를 만들라는 배려였던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경옥 도자의 특징 중에서 백미는 그의 서사가 도자에 이입됐다는 것이다. 삶의 굽이굽이에서 맞닥뜨렸던 특별했던 서사들을 도자 표면에 표현했다. 그 서사들을 극대화하는 것이 바로 짙은 회화성이다. 그는 도자와 회화의 만남을 적극 시도한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살길이 막막할 때 달빛 아래 혼자 울었던 모습을 대나무 숲 아래 보름달로 재현하거나, 모친이 대나무 아래 정한수 떠놓고 달에게 기도하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사위가 펀드회사 대표로 취임했을 때의 기쁨을 우주의 빅뱅으로 구현하거나, 부귀영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해바라기나 진주 같은 상징들을 꼴라주로 활용거나 하는 등의 서사들이 그의 도자표면에서 빛을 발한다. 이는 곧 도자예술의 현대성을 높이는 기제로 작용한다.

도자의 표면에 회화같은 조형성을 획득하고 다채로운 색채에도 열어두려면 물성 연구는 필수다. 색을 중첩하고 수차례 가마에서 굽는 과정은 지난하지만 전통과 현대성의 조화를 위한 열망이라는 믿음으로 그는 물성 연구에도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역경의 시간들을 보내고 늦은 나이에 도자를 시작했지만 정말 열심히 했고, 지금은 저 만의 도자예술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칠순을 저와 가족들이 예술을 통해 의미를 만들 수 있어 이번 전시가 너무 뜻 깊은 것 같습니다.” 전시는 29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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