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수지 애태우던 공중전화…대학가에서도 사라진다

2025-04-24

“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왜 하루 종일 연락이 안 돼. 이거 듣는 대로 삐삐 쳐, 알았지? 꼭!”

종강 파티가 열린 1994년 겨울의 어느 날.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새내기 음대생 서연(수지 분)은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하고 공중전화 부스를 들락날락한다. 마음에 두고 있던 ‘썸남’ 승민(이제훈 분)과 도통 연락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가 난 서연은 술을 잔뜩 마시고 말았고 결국 남자 선배의 부축을 받아 겨우 집 앞에 도착한다. 고백을 결심하고 하루 종일 서연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승민은 뜻밖의 광경에 충격을 받고 발걸음을 돌린다.

1980~1990년대 ‘아날로그 시대’를 풍미했던 공중전화가 당시 청춘들의 추억이 깃든 대학 캠퍼스에서도 자취를 감출 것으로 전망된다. 24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KT는 최근 서울대 등 일부 대학에 공중전화 철거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KT 측은 “공중전화 이용 감소를 고려해 매년 시설을 효율화하고 있다”며 “타 대학들에도 순차적으로 안내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대학 내 공중전화는 사실상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까지 줄어든 상태다. 현재 서울 내 대학 캠퍼스에 남아 있는 공중전화는 총 73대에 불과하다. 서울대 8대, 한국체육대·가톨릭대가 각각 6대로 가장 많고 경희대·서강대·한양대·홍익대 등 12개 대학은 각 1대만을 운영하고 있다. 이화여대의 경우 2011년 교내 공중전화가 12대에 달했지만 현재는 3대만 운영 중이다.

지금은 비록 길거리 ‘애물단지’로 전락했지만 공중전화는 휴대폰 보급 전인 1990년대 중반까지 시민들의 입과 귀 노릇을 톡톡히 했다. 특히 대학 캠퍼스 내 공중전화는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보듯 1980~1990년대 청춘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1990년대 초 대학을 다녔던 주부 이 모(53) 씨는 “당시 휴대폰은 요금이 너무 비싸 평범한 학생은 절대 꿈도 꿀 수 없었다”며 “부잣집 딸로 소문났던 딱 한 명 빼고는 과의 모든 친구들이 ‘삐삐’가 오면 곧장 공중전화로 달려가고는 했다”고 회상했다.

평소에도 그리운 가족, 사랑하는 연인과 담소를 나누기 위해 찾은 학생들로 부스가 북적였지만 가장 북새통을 이룬 것은 단연 대학 입시철이었다. 원서 접수 기간만 되면 전국 주요 대학의 원서 접수 창구 인근 공중전화 부스 앞은 치열한 ‘눈치작전’을 벌이는 학생들과 부모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KT에서는 아예 공중전화가 설치된 이동전신전화 차량을 창구 앞에 보내놓기도 했다. 수천 명이 몰려들면서 KT 역시 공중전화카드 판매로 쏠쏠한 매출을 올렸다.

KT 측은 전면 철거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KT 관계자는 “사용량이 적은 곳을 위주로 철거할 계획”이라며 “긴급 상황 등을 이유로 대학 측에서 반대할 경우에는 유지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서울대 총학생회 측에서도 최근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을 위해 설문 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2018년 KT 아현지사 화재 등 비상사태를 대비해 최소한의 부스만 남겨두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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