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에서 23일 막을 내린 제106회 전국체전은 ‘황선우 체전’이었다. 백미는 지난 20일 남자 수영 자유형 200m 결승에서 황선우(22·강원도청)가 1분43초92로 아시아신기록을 세운 뒤 포효하고 눈물을 흘린 장면이다. 2020 도쿄올림픽과 2024 파리올림픽 이 종목에서는 두 번 모두 1분44초대에서 금메달이 나왔다.
황선우는 지난해 카타르 세계선수권 자유형 200m에서 금메달을 따 기대를 모았지만 파리올림픽 성적은 최악이었다. 18세의 어린 나이로 자유형 100m, 200m에서 잇달아 결선에 진출하며 혜성같이 등장한 도쿄올림픽과 달리 파리에서 두 종목 모두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수영 선수에게 18세부터 21세는 폭발적 성장기지만, 황선우의 올림픽 기록은 1분44초62에서1분45초92로 퇴보했다.
2021년 이후 무려 4년 넘게 침체에 빠졌던 그가 부산에서 아시아신기록 1개, 한국신기록 3개, 금메달 4개를 수확하며 화려하게 돌아왔다. 도대체 황선우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걸까. 22일 부산 사직 실내수영장에서 만난 황선우는 “대회를 3주 남기고 훈련량을 50~60%는 줄였다”고 뜻밖의 비결을 말했다. ‘테이퍼링(tapering)’ 매직이다. 황선우는 “고강도 훈련 뒤 대회를 앞두고 훈련을 조절하면서 경기력을 극대화하는 과정”이라며 “그 전에는 테이퍼링 기간에도 한 1, 2주 정도는 운동을 어느 정도 했다. 이번에는 한 일주일 남겨두고는 거의 ‘오프’ 느낌으로 쉬었는데 더 좋은 기록이 나왔다”고 놀라워했다.

테이퍼링을 지휘한 이보은(49) 강원도청 감독은 “왜 진작 이러지 않았을까. 이번 전국체전을 첫 번째 시험무대로 삼았다. 훈련량을 줄이는 결정이 쉽지 않았지만 믿음을 가지고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테이퍼링을 시도한 강원도청은 황선우뿐만 아니라 김우민과 양재훈이 각각 금메달을 4개, 5개씩 땄다. 또 김영범, 양재훈, 최동열은 경쟁하듯 한국신기록을 작성했다. 이번 대회 12개의 한국신기록 중 10개가 수영, 그중 6개가 강원도청에서 나왔다.
이 감독은 “긴 슬럼프를 이겨내고 우는 모습이 마치 영화 같았다”고 제자의 성취를 기뻐했다. 황선우도 기록을 깬 뒤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을 묻자 "코치님, 부모님, 동료"라고 코치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올림픽 후 패인을 찾지 못해 답답해하던 황선우에게 이 감독은 호흡과 제자리 수영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 감독은 “호흡을 두 번에 나눠 하면서 머리를 물 밖에 들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 문제는 해결됐다”고 말했다. 이어 “물살을 타고 나가야 하는데 팔만 빨리 돌리면서 제자리 수영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며 “황선우는 엇박자로 가는 로핑 영법을 구사한다. 하지만 올림픽을 통해 로핑 영법에 한계를 느꼈고, 이번 체전에서 롤링 영법을 가미한 새로운 시도를 했다. 경기 직전까지 팔을 돌리며 템포를 익히는 모습이 그래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국가대표팀 코치로도 겸직하는 그는 “선우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심했다”고 말했다.

다음 목표에 대해 황선우는 “1분42초대 목표 설정은 아직 이르다. 1분43초대 초반까지 가는 것”이라며 “우선은 내년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 자신감을 얻고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까지 달려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파리올림픽 남자 자유형 200m 금메달리스트 다비드 포포비치(21·루마니아)의 개인 최고 기록은 2022년 세운 1분42초97이다. 황선우는 “수영은 기록경기지만 내 생각에는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우승하는 경기”라며 레이스 운영 능력을 강조했다.
“쉴 때는 예쁜 카페를 찾아가거나 한강에 나가 물멍을 하는 걸 좋아한다”는 그는 지난 올림픽에서 좌절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묻자 “그거 못했다고 인생 끝나는 것 아니다. 그냥 지나가는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훈련했다”고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