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의 길 ⑥
사상 세 번째로 대통령이 탄핵 소추돼 직무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게 됐다. 제왕적 대통령제로 상징되는 현행 헌법은 1987년 개정된 후 한 번도 손 보지 않아 급격한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과연 우리 헌법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융합형 혁신기업 육성을 통한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가를 묻고 싶다. 전혀 아니다. 87년은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다. 그렇다면 헌법과 신산업 육성이 어떻게 관련이 되나. 바로 헌법 개정을 통해 기존의 중앙집권적 규제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전국 동일 규제, 혁신 산업 발목
개헌 통해 지방정부 권한 확대
미국처럼 포용적 규제 바람직
우리나라의 규제 체계는 국가 중심적이며 산업별로 단일한 정부 부처를 통해 집행된다. 정부 부처 분류도 20세기적이다. 사전적 규제 체계로 인해 새로운 서비스와 제품은 출시 전에 기존 규제와 저촉되지 않는지 관계 부처의 사전 검토를 받아야 한다. 대부분 기존 규제를 고무줄처럼 늘려서 새 제품과 서비스를 가로막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렇게 기득권을 보호하고 혁신 산업을 탄압하는 경직된 규제 시스템은 혁신 기업이 신기술을 시장에 출시하는 데 커다란 장벽으로 작용한다. 대표적으로 교통·의료·숙박·식품·건강 등 전통 산업이 지배하는 생활밀착형 서비스 분야에서 정부의 기득권 옹호라는 걸림돌 효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이러한 중앙집권적 규제 체계는 전국적으로 동일한 규제를 적용한다. 그래서 혁신 기술과 제품이 기존 규제로 막히면 나라 어느 곳에서도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의료·법률·교통·숙박 등 시민 생활권 중심 산업은 아날로그 규제로 인해 디지털 전환이 막혀 있어 혁신기업이 국내에서의 도전과 성공을 기반으로 글로벌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지난해 경제성장률 1%대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게 된 주요 원인 아닌가.
미국과 같은 연방제 국가에서는 연방정부가 외교·통상·국방 같은 거시적 사안에 집중하고, 서비스 관련 규제는 주(州) 정부나 시와 같은 지역 정부가 담당한다. 그래서 주마다 시마다 규제가 다를 수 있고 혁신 산업에 대해 포용하는 지역은 혁신 기업이 몰려든다. 이러한 분권화 구조 덕분에 신기술과 신서비스를 지역 정부 단위에서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상원과 하원의 입법 과정, 연방과 주의 협의로 인해 전국 단위의 입법 대응 속도가 느리다. 이러한 ‘느림’은 산업 성숙을 기다리며 규제를 적용하는 사후 규제 방식을 자연스럽게 내재화한다는 점에서 혁신 산업의 융성 기반을 제공한다.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FSD) 성공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테슬라는 별도의 제도적 근거 없이 수년간 차량 구매자들을 활용해 FSD를 실험했으며,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이를 사후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조사하며 FSD의 위험성을 검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예를 들어 NHTSA는 테슬라에 안전 문제와 관련한 데이터를 요구하고, 필요하면 추가 안전 조치를 요구했다. 이러한 포용적 접근 방식은 지역별 실험과 산업 성숙도를 기반으로 한 느린 규제 적용을 가능하게 했고, 결국 테슬라는 이달 들어 정식 버전을 출시하게 되었고, 그 높은 완성도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미국의 규제 생태계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 이런 느린 규제로 미국은 AI 개발에서도 세계 최강국이 됐다.
이처럼 미국의 느리고 포용적인 규제 시스템은 신기술 실험을 장려하며, 다원화된 혁신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는 단일 국가 체계인 우리나라가 ‘빠른’ 규제 대응으로 혁신 시장을 가로막는 것과는 정반대다.
헌법 개정 논의는 이러한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와 지방 정부 간의 역할을 명확히 재정립해 국가는 외교·통상·국방 등 거시적 사안에 집중하고, 지역 서비스와 관련된 규제 권한은 226개 기초자치단체(시·군·구)에 이양하는 명시적 개헌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지방 정부에서 경쟁적인 시장 환경이 조성돼 생활 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과 혁신기업이 작은 자본으로 보다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시험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야 지방 소멸 같은 사회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구태언 변호사·법무법인 린 TMT그룹 총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