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부터 일본까지 여러 국가들이 미국과 무역 협상 결과를 발표하고 있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얘기가 나온다. 세부 내용에서 합의가 되지 않았거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말 바꾸기’ 등 변수 역시 배제할 수 없어 진짜 협상은 지금부터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미국과 추가 협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국가로는 영국이 대표적이다. 지난 5월 초 영국은 전 세계 국가 중 처음 트럼프 2기 행정부와 무역 합의를 성사시키고도 부문별 관세 문제에선 협상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영국산 자동차와 항공우주 산업에 대해 10%로 관세가 인하된 것과 달리, 영국의 주요 대미 수출 품목인 철강과 알루미늄을 놓고선 입장이 엇갈리는 것이다. 백악관은 당초 25%로 설정된 이들 영국산 품목의 관세를 폐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세부 사항이 더 이상 논의되지 못하면서 50%로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이는 미국이 수입산 철강·알루미늄에 일괄적으로 부과하려는 수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말 스코틀랜드를 찾는 것도 추가 협상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영국 스카이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25~29일 자신의 골프 리조트가 있는 스코틀랜드 애버딘을 찾는다”며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만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새 골프장의 개장 행사 참석을 겸한 자리에서 미·영 간 무역 협정을 구체화하는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이 매체는 내다봤다. 9월 중순으로 예정된 영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양국 정상이 굳이 비공식 회담을 갖는 건 추가 협상의 성과를 내야 할 필요성에 공감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조너선 레이놀즈 영국 산업통산 장관 역시 오는 28일 워싱턴DC를 방문한다. 정상 간 논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미 인사들과 실무 회동을 갖는다.
이달 초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 트럼프 행정부와 관세 협상을 마친 베트남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필리핀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베트남의 경우 미국이 최초 통보한 관세율 46%를 20%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미국산 제품에 무관세 조치를 시행한다는 조건을 내걸면서다.

문제는 중국을 겨냥한 ‘환적’ 조항을 둘러싸고 불확실성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3일(현지시간) 기사에서 “베트남을 경유해 환적되는 제3국 상품에 미국이 40%의 관세를 매긴다는 조항이 이번 협상에 포함됐지만 환적의 정의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중국산 자재를 사용해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제품도 환적으로 볼 것인지, 이들 제품의 미국 수출 관세는 얼마인지 등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아 기업의 우려가 상당하다고 한다. 환적이라는 용어 자체에 대중국 견제라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는 점도 모호함을 키운다. FT는 “베트남이 신속히 움직여 유리한 조건을 얻어냈는지, 스스로 곤경에 처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라며 “환적이 이번 협상에서 가장 위험한 대목”이라고 봤다. 또 이 매체는 “양국 모두 추가 세부 내용을 제시하지 않은 채 ‘공정하고 균형 잡힌 호혜 무역 협정 프레임워크에 도달했다’고만 밝혀 베트남에선 당혹감이 포착된다”고 전했다.
최초 32%에서 19%까지 관세율을 낮추기로 한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도 추가 협상이 필요한 만큼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농산물 45억 달러(약 20조8000억원), 에너지 제품 150억 달러(약 6조2500억원), 보잉 항공기 50대 등 미국산 구매를 약속한 인도네시아는 그 대가로 미국에 팜유, 니켈 수출에 대한 관세 면제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22일(현지시간) 미·필리핀 정상회담 후 19% 관세를 발표한 필리핀도 협상 성공을 논하기엔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은 그레고리 폴링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동남아시아 전문가를 인용해 “베트남, 인도네시아와 마찬가지로 필리핀의 무역 협정 또한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많은 것을 말하기에는 이르다”고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