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발’만 디디면…연금개혁 멈출 수 없는 이유

2025-01-29

국회 보건복지위 연금개혁 재시동…위원장 “모수개혁 신속히 마무리”

남은 문턱은 소득대체율 2%포인트 차뿐이지만 합의 쉽지만은 않을 듯

[주간경향] “무엇이 극우 발흥의 토양을 만들었을까요. 저는 심화하는 양극화 등을 해소하지 못한 ‘사회정책의 실패’가 기저에 있다고 봐요. 좋은 사회정책의 효능감을 회복하지 못하면 한국사회는 그대로일 겁니다. 지금 우리가 뜨겁게 정책 얘기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윤형중 LAB2050 대표)

반헌법적 계엄과 현직 대통령 구속, 서울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가 숨 가쁘게 이어진 50여 일이었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난항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 논의가 의미 있을까. 정책연구자인 윤 대표는 “당연히 그렇다”고 말한다. “좋은 정책을 위해 토론하고 타협하는 정치 공간을 만드느냐 여부에 우리의 앞날이 달려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에 다시 시동이 걸렸다.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월 21일 “최대한 신속하게 국민연금 모수개혁을 마무리 짓겠다”고 ‘선언’했다. 모수개혁은 ‘내는 돈’을 의미하는 보험료율(현행 9%)과 ‘나중에 받을 돈’을 의미하는 소득대체율(2025년 기준 41.5%)의 수치를 조정하는 개혁을 말한다. 박 위원장은 “현재 보건복지위에 상정된 국민연금법 개정안들을 신속하게 심사한다면 올해 2월 내에도 (연금개혁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지난 1월 23일 법안 심사를 위해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는 입법 공청회도 열었다.

국민연금은 계층 간·세대 간 연대로 국민 노후를 보장하는 방대한 복지제도지만 이 제도를 안정화하기 위한 개혁은 2007년 이후 18년간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계엄·탄핵 정국 속에서 한국사회는 18년 묵은 과제를 수행해낼 수 있을까. 일단 이번 연금개혁 논의를 주목할 이유는 충분하다. “계층 간 불평등과 세대 간 불공정을 조금이라도 완화할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시국이 엄중해도 멈춰선 안 되기 때문”(윤 대표)이다.

그간 연금개혁 방향에 대해선 소득대체율 인상론과 재정안정론이 대립해왔다.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수치 조정을 의미하는 이번 ‘모수개혁’ 과정에서도 이를 둘러싼 논란은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관이 완전히 다른 양측 입장을 살펴보고 그간의 개혁논의 과정과 쟁점, 과제를 짚어본다.

■3대의 국민연금

1960년생인 A씨는 30~40대엔 보험설계사로, 50~60대엔 조리사로 일해오다가 최근 은퇴했다. 보험설계사 시절엔 지역가입자(개인사업자)로 보험료(소득의 9%)를 전부 내오다가 부담이 너무 커 5~6년간 중단했다. 병원 조리사로 일하고부터는 직장가입자로서 보험료 납입(직장가입자는 사용자가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을 재개해 최종적으로 17년간 보험료를 납부했다. 그가 현재 받는 연금액은 월 46만원 정도다.

1982년에 태어난 A씨의 딸 B씨는 월급이 약 540만원가량 되는 직장인이다. 매월 내는 국민연금 보험료는 약 24만원(월소득의 4.5%). 회사가 내는 보험료까지 합하면 약 48만원이다. B씨는 65세가 되는 2048년부터 매달 약 139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B씨처럼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낸 보험료를 모두 합하면 연간 58조원(2023년 기준). 이중에서 A씨와 같은 연금생활자들에게 지출되는 돈은 39조원(2023년 기준)이다. 나머지는 기금에 합산된다. 현재 1146조580억원의 기금(기금운용 수익까지 합산·2024년 9월 기준·국민연금공단 통계)이 조성돼 있다.

2022년에 태어난 B씨의 딸 C양의 경우를 살펴보자. C양이 19세가 되는 2041년엔 연금액 지출이 보험료 수입을 넘어서기 시작한다. 지금은 막대해 보이는 기금이 이때부터 빠르게 줄기 시작한다. 연금 재정안정을 위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C양이 33세가 되는 2055년 기금은 바닥난다. 이때 C양이 A씨, B씨 같은 노인들의 연금을 감당하기 위해 내야 하는 보험료는 월소득의 3분의 1(2060년 기준 보험료율 29.8%·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가까이 된다.

연금개혁을 왜 해야 하는지를 3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훗날 C양과 같은 미래세대가 막대한 부담을 질 수 있으므로 B씨와 같이 현재 ‘일하는 세대’가 보험료를 더 내고 나중에 받을 연금액은 깎자는 게 이른바 ‘재정안정론’이다. 반면 소득대체율 인상론자들은 B씨가 훗날 받게 되는 연금액을 올려야(소득대체율을 인상해야), B씨는 물론 C양에게도 국민연금이 노후소득 보장 제도로서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본다. 소득대체율 인상론은 연금액 지출 급증 등의 문제는 훗날 국가가 재정을 투입해 대비하면 될 것으로 본다. 반면 재정안정론 측에서는 ‘미래의 재정부담’ 역시 미래세대의 조세 부담으로 귀결될 것이므로 어떻게 해서든 현세대가 재정안정에 기여해야 미래세대가 받을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언제까지 반복하나

국민연금 개혁 방향을 둘러싼 양측의 논쟁이 본격화된 것은 2010년대 후반이다.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5년마다 재정수지를 계산하는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권 2년차였던 2018년 네 번째 재정계산이 이루어졌다. 당시 재정계산 결과는 아무 조치를 하지 않으면 2057년 기금이 바닥난다는 것이었다. 국민연금은 앞서 1998년(보험료율 3→9%, 소득대체율 70→60%), 2007년(소득대체율 60%를 2008년 50%로 낮춘 뒤 해마다 조금씩 떨어져 2028년 40%에 도달하도록 설계) 두 차례만 개혁이 이뤄졌다. 많은 이들이 2018년을 연금개혁의 적기로 보았지만, 끝내 개혁은 무산된다. 전문가들이 재정안정론과 소득대체율 강화론으로 나뉘어 맞서는 가운데 당시 문재인 정부는 여러 수치를 조합한 4개 개편안을 병렬해 제시했다. 그 뒤 논의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넘겼고, 경사노위 역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3개 개편안을 발표한 뒤 활동을 종료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같은 양상의 연금개혁 공방이 이어졌다. 2022년 10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가 첫 회의를 시작했다. 연금특위는 민간자문위원회에 개혁 초안을 요청했으나, 자문위에서 소득대체율 인상론과 재정안정론이 재차 맞부딪히며 단일한 개혁안이 나오지 않았다. 이어 지난해 4월 500인의 시민으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에선 ‘보험료율 13%로 인상, 소득대체율 50%로 인상’(공론화위에 부쳐진 대안1·56% 지지)방안이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 유지’(대안 2·42.6% 지지)방안보다 더 많은 표를 받았다. 그러나 “소득대체율 인상 효과가 과장된 자료가 공론화위에 제공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정보 왜곡 논란이 잇따라 공론화위 결과대로 개혁을 단행하기는 어려웠다. 한편에선 정부나 여야가 ‘표가 되지 않는’ 연금개혁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않고 전문가 합의, 사회적 합의만 내세우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결국 21대 국회 임기 종료를 앞둔 지난해 5월 여야는 대안 1·2를 절충한 안을 놓고 논의를 이어갔다.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인상하는 안에 대해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뜻을 모았고, 소득대체율을 놓고는 45%(더불어민주당), 43%(국민의힘)로 입장이 벌어져 있었다. 당시 국민의힘이 수정 제안한 44%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수용하면서 개혁이 이루어지는 듯싶었지만, 대통령실이 “구조개혁도 해야 한다”고 나서면서 결국 합의는 무산됐다.

이어 지난해 9월 ‘입장 부재’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정부도 안을 내놓는다. 보험료율은 13%, 소득대체율은 42%(2024년의 소득대체율 유지)로 하되, 중장년일수록 보험료가 빠르게 오르는 ‘세대별 보험료율 인상 차등’ 장치를 두자고 제안했다. 가입자들의 기대 여명과 가입자 수 증감에 따라 연금액을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자는 내용도 담겼다. 민주당은 정부안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간의 논의과정에 없던 장치들이 추가된 데 대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제도”(세대별 보험료율 인상 차등) “연금 대거 삭감”(자동조정장치) 등의 비판이 주류를 이뤘다. 여기까지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까지의 연금개혁 논의 과정이다.

■27년 만의 보험료율 인상, 이뤄지나

향후 연금개혁 논의는 21대 국회 말미에 여야가 이견을 좁힌 ‘보험료율 13%’와 ‘소득대체율 42~45%’를 둘러싼 조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주민 보건복지위원장은 지난 1월 21일 간담회에서 기자들에게 “보험료율에 대해서는 (여야가) 더는 이견이 없다고 보시면 될 것 같고, 소득대체율을 어느 정도로 하느냐를 두고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구조개혁’을 내세우며 여야 합의를 깨기 직전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세대별 보험료율 인상 차등’과 ‘자동조정장치’는 빼고 당장은 모수개혁에만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18년 만의 개혁까지 남은 문턱은 소득대체율 단 2%포인트 차뿐이다. 그러나 1월 23일 열린 입법청문회는 ‘소득대체율 합의’가 쉽지만은 않을 것을 보여줬다. 소득대체율 인상론 측의 전문가들은 “공론화위 결과를 반영해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해야 한다”(주은선 경기대 교수·남찬섭 동아대 교수)고 여전히 주장하고 있고, 재정안정론 측에선 “제대로 된 재정안정을 위해선 자동조정장치가 필요하다”(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는 주장도 나왔다.

다만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정치권에서 합의한 범위(보험료율 인상 13%·소득대체율 42~45%)는 상당한 성과”라면서 “특히 보험료율 합의가 굉장히 중요하다. 1988년 국민연금법에 9%가 명시(적용은 1998년부터)된 이후 첫 인상이 된다”면서 지금까지의 여야 협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오 위원장은 그러면서 “모수개혁을 마무리하고 이걸 기반으로 기초연금과 퇴직연금까지 포함한 소득보장 플랜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연금개혁까지 ‘마지막 한 발’을 딛기 위해선 어쩌면 그간의 ‘소득대체율 인상 대 재정안정’ 논쟁을 성찰하는 일부터 해야 할지 모른다. 연금개혁 논의를 청년의 관점에서 모니터링해온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한쪽에선 ‘(재정안정화하지 않아도) 국가가 나중에 다 해줄 수 있다’고 하고 한쪽에선 ‘(재정안정화하지 않으면) 수천조원의 빚을 지게 된다’고 한다. 양쪽 전문가들이 합리적이지 않은 극단적인 표현을 쓰는 경우가 너무 많다”면서 “진영으로 나뉘어서 ‘어느 편이냐’ 따지는 것이 지금의 정치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타협하려는 태도부터 갖춰야 한다”고 꼬집었다.

윤형중 LAB2050 대표 역시 “재정을 좀 중요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기금 고갈 공포를 퍼뜨린다’며 비난하거나, 재정보다 소득대체율을 중시하는 쪽에겐 ‘재정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고 하는 등 서로에 대해 인신공격까지 하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면서 “수익비(총보험료 대비 연금총액)를 비롯해 토론의 토대가 되는 수치에 대해서도 합의가 안 돼 있다. 앞으로의 공론화 과정에선 이런 부분은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모두 29건. 국회 보건복지위는 설 연휴 직후부터 집중적으로 심사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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