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탐구] 현대 민주주의 망국의 원인 ‘세금 실패’…우리가 몰랐던 G20 부유세 논의

2025-07-02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역사적으로 세금이 문란한 나라는 망했다. 거짓된 학자와 정치가들은 국가 망조의 원인을 복지로 꼽지만, 전 세계 주요국에 드리운 가장 확실한 망조의 그림자는 세금제도의 실패와 몰락이다. 월급 근로자들은 약간의 수입 증가에도 세금을 더 내지만, 억만장자들은 조단위 순자산을 늘려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2024년 11월 18일 G20 브라질 회의. 각국 수반들은 억만장자(순자산 1조 3000억원가량)와 준 억만장자(순자산 1300억원 가량) 부유세 과세를 위한 연대를 약속했다. 미국과 독일은 반대했다. 주요 외신들도 다소 회의적이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미국의 반대에도 법인세 글로벌 최저한세를 관철해온 바 있다. G20 회의, G7 회의, OECD 재무장관회의까지 글로벌 연대의 표어는 포용적, 지속가능한 성장이다. 불평등 위기는 사회역동성을 위축시키고, 성장잠재력을 침체시킨다. 불평등 위기는 이제 생존의 위기다. 전 세계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도 여기에 있다.

◇ 근로자의 불행은 억만장자의 행복

현대 소득세 체계는 완전히 실패했다. 흔히 상위 10%가 소득세 70~80%를 낸다고 알려져 있다. 대기업 임원, 부장들은 세금이 많다고 투덜댈 수 있다. 이는 부분적 사실이다. 소득세는 누진체계이며, 소득격차는 소득세에 반영된다.

그러나 회장님 일가의 실효세율은 부하 임원들의 반도 안 된다. 일정 이상 초자산가들은 오히려 세금을 덜 내고 있다. 대부분 주요국에서 자산지니계수가 소득지니계수의 두 배를 넘는다.

사람들이 이유를 몰랐을까. 아니다. 학자들도, 국세청도, 언론들도 오래전부터 그 비밀을 알고 있다. 다만, 제대로 알리지 않을 뿐이다.

미국의 탐사전문보도매체 프로퍼블리카(ProPublica)는 2021년 6월 8일 ‘IRS 비밀 파일’ 보도를 통해 억만장자들의 세금 마술을 폭로했다.

2007년 포브스가 최고의 억만장자로 꼽은 사람은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의장이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의장은 2007년 38억 달러의 순자산 증가에도 불구하고, 4600만 달러의 매우 적은 과세소득을 신고했다. 제프 베이조스와 당시 그의 부인 맥켄지 스콧의 수입을 더한 금액이었다. 각종 공제를 통해 그 해 제프 베이조스가 납부한 연방소득세는 0원이었다.

2011년엔 더 역겨운 일이 벌어진다. 제프 베이조스는 자신이 너무 가난하다며, 4000달러의 서민 대상 자녀공제를 받아 챙겼다.

2006~2018년까지 제프 베이조스의 재산은 1270억 달러 증가했고, 과세소득으로 65억 달러를 신고했다. 세금은 14억 달러였는데, 소득 대비 실효세율은 21.5%였지만, 그의 자산에 비하면, 실효세율은 1.1%에 불과했다.

제프 베이조스의 마술 뒤에는 미실현이익이란 세법 논리가 있다. 배당금을 받으면 세금을 내야 하지만, 배당 대신 주식으로 받으면 투자금, 실현되지 않은 이익이라고 보아 과세하지 않는다. 소득을 자산에 녹이면 세금을 회피할 수 있는 마술, 이 마술은 한국에도 잘 녹아있다.

서민들에게 연봉 1달러를 받으라고 제안하는 건 매우 질 나쁜 농담이다. 하지만 애플 전 CEO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 오라클 회장 래리 엘리슨, 구글 전 CEO 래리 페이지는 연봉 1달러를 기꺼이 수용했다. 억만장자들에게 연봉은 세금을 내야 할 손실일 뿐이며, 그들은 막대한 소득을 자산에 숨길 수 있다.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도 버크셔 해서웨이로부터 배당금을 받는 대신 투자금으로 바꾸어 막대한 재산을 쌓았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법인세를 낸다지만, 법인세율은 소득세율보다 낮고, 공제도 더 많다.

그렇다면 이들은 연봉도 배당도 안 받고 어떻게 살아가나? 여기서 쓸 수 있는 한 가지의 마술은 자산을 담보로 대출받으면 된다. 실효세율을 이자율로 대체하는 개념이다. 생활은 대출받은 돈으로 하면 된다.

2016~2017년 모두 5억 4400만 달러(한화 약 7000억원)의 세무조정 소득을 신고한 칼 아이칸(아이칸 엔터프라이즈 회장)은 이 방법으로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부동산으로 12억 달러를 빌렸다. 빌린 현금으로 투자하여 또다시 부를 일구었다.

이들이 첨단금융공학으로 막대한 부를 얻으려면 저금리가 필요했고, 당국은 대체로 이를 수용했다. 연봉 근로자가 물가상승으로 받는 고통은, 억만장자들에게는 행복 그 자체다.

이 밖에도 무수한 마술들이 존재한다. 조세회피처를 통한 소득이전회피 등이 그렇다.

이는 미국만의 마술일까. 조세체계를 무너뜨리는 이 마술은 미국 과세체계를 수용한 한국‧일본, 대륙법 체계인 유럽 및 전 세계에 퍼져 있다. 현대 소득세, 나아가 조세체계는 실패를 겪고 있다.

◇ 부유세의 혹독한 실패, 국제 연대로 부활하다

일부 국가는 망가진 조세체계를 복구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 2013년 프랑스가 도입한 부유세였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 시도에서 혹독한 실패를 경험해야만 했다.

당시 프랑스 부유세는 연간 100만 유로(약 13억원)를 넘는 금융소득 초과분에 대해 최고 75%의 세율을 부과하는 방식이었다(종부세와 비슷한 구조다). 생산의 기반인 영업재산을 세액공제해 줬는데, 그 폭이 지나치게 넓었다. 부유세를 피해 외국으로 도망가는 억만장자를 막지도 못했는데, 프랑스 국민배우 제라르 드 빠르디유는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고,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LVMH) 그룹 회장도 벨기에 국적 취득을 시도하기도 했다. 2015년 1월 올랑드 정권은 뭘 해보지도 못하고, 억만장자 부유세를 폐지했다.

이는 올랑드 정권의 실패이긴 했지만, 부유세 그 자체의 실패는 아니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013년 자신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부유세 보완의 단서를 제공했다. 그는 자본소득성장률이 경제성장률을 앞지르고, 이를 통해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것을 실증‧보고했다. 그리고 소득이 아닌 자산에 글로벌 부유세를 매김으로써 이 불평등과 왜곡을 해소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가브리엘 주크만 UC버클리대 및 파리경제대학 교수는 여기에 더해 불평등의 원인이 조세 문란이란 점을 밝혀냈다.

주크만 교수는 2019년, 2021년, 2022년 세계 불평등 관련한 실증 연구를 잇달아 발표했다. 그와 함께 한 인물은 자신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이자 스승인 토마 피케티 교수, 에마뉘엘 사에즈 UC버클리 교수였다.

연구의 핵심은 억만장자들이 조세회피처 등을 이용해 누진 과세 체계를 교란, 막대한 부를 쌓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2023년 전미경제학회는 주크만 교수에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수여했다. 이제 경제학계도 조세문란이 더는 미룰 수 없는 글로벌 의제임을 인정한 것이다(*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은 노벨경제학상 다음의 권위를 가지는, 40세 미만 경제학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2009년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 수상자는 에마뉘엘 사에즈 교수).

프랑스 다음으로 부유세에 가장 의욕적인 정부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였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는 바이든 행정부에 2010~2018년 사이 준억만장자 400명의 평균 소득세율이 8%대인 반면, 연간 7만 달러를 버는 미국 중위소득 가정의 평균 소득세율 14%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보고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상위 0.01%의 준억만장자(순자산 약 1300억원) 이상에 대해 20%의 최저한세를 물리는 안을 발표했다. 과세대상에 미실현 투자이익까지 포함시켰다.

바이든의 부유세는 정치적 흐름에 밀려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프랑스 부유세의 실패, 토마 피케티‧에마뉘엘 사에즈‧가브리엘 주크만 교수의 조세회피와 불평등 연구, 프로퍼블리카의 탐사보도까지. 이 일련의 흐름은 하나의 교훈을 말하고 있었다. 소득 중심의 직접세 체계는 실패했으며, 이 실패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부유세가 필요하지만, 자산에 제대로 과세하지 않는 부유세는 반드시 실패한다.

그 교훈은 2024년 G20의 국제적 연대로 부활했다.

2024년 11월 18일 G20 브라질 회의에서 각국 수반들은 억만장자(순자산 1조 3000억원 가량)와 준억만장자(순자산 1300억원 가량)에 부유세 과세를 위한 글로벌 연대를 공약하고, G20 리우데자네이루 선언에 이를 포함했다.

회의 의장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이 선언을 위한 이론적 토대로써 주크만 교수에게 이를 위한 연구보고서를 요청했다.

그 보고서 이름은 ‘초자산 부자들에 대한 최저한세율(최소 실효세율 조정)에 대한 청사진’이다(A blueprint for a coordinated minimum effective taxation standard for ultra-high-net-worth individuals).

◇ ‘부유세 2%’ 전 세계 조세문란 복구할 마지노선

보고서는 부유세에 대한 몇 가지 핵심 관점을 제공한다.

어떤 억만장자들이 얼마나 조세회피를 하는 것인지, 그들의 자산은 얼마인지(과세대상), 부유세를 매긴다면 얼마나 매길 것인지(적정세율) 억만장자들이 부유세를 피해 도망가는 것을 어떻게 막을 건지 등이다(조세회피 방지).

위 그림 1은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의 억만장자들의 세전소득 대비 평균세율이다. P는 소득 백분율을 말하는데 99.9는 상위 0.1%를 말한다.

소득세는 버는 돈이 많을수록 더 많은 세율을 부담한다.

그러나 그림 1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녹색), 네덜란드(노랑), 프랑스(파랑)는 상위 5% 구간에 도달하는 순간 급속도로 평균세율이 하락한다.

소득별 평균세율이 가장 곧은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프랑스의 경우 상위 1% 이하까지는 52%의 세율에 도달하지만, 그다음 상위 1% 초과부터는 세율이 꺾이기 시작해, 상위 0.0001%를 초과하는 최상위 부자들은 27%까지 급락한다.

미국(빨강)의 경우 상위 0.01%부터 평균세율 그래프가 꺾인다.

주크만 교수는 이 현상의 원인에 대해 회사가 억만장자들의 진짜 저수지라는 점을 지적한다. 직장인들은 연봉이란 지갑에 부를 채우지만, 억만장자들은 사업체란 지갑에 부를 채운다. 그리고 소득세는 사업체에 쌓인 부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이 그래프의 세전소득에는 소비세와 법인세 등이 간접세가 고려되었는데, 이를 제외한 순수 직접세만 뽑아내면 세전소득 대비 개인소득세 실효세율의 변동 추정치 그래프가 나온다(그림 2).

그림 2는 억만장자 앞에 각 주요국의 소득세가 얼마나 퇴행적인지를 나타낸다. 네덜란드는 상위 5%부터 프랑스는 상위 0.1%부터, 미국은 0.01%부터 실효세율의 추락이 시작되며, 최고 억만장자 실효세율에 이르러서는 네덜란드는 거의 0%, 프랑스는 1.7%, 미국은 8%까지로 떨어진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억만장자들이 보유한 지주사들을 통해 자산을 이용하기에 이들에게 부과되는 실질 세수는 법인세이다. 프랑스의 경우 지주사에게 계열사가 지급하는 배당금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지주사 자산 이용을 막고 있긴 하지만, 배당금을 미실현이익으로 유보할 수 있기에 실효세율을 깎아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억만장자들의 진짜 부인 순자산 대비 실효세율은 어느 수준일까.

억만장자들의 한 회차 부의 그래프는 자본소득 세후수익률을 기울기로 우상승한다(기울기 a > 0, a = 1+확정수익률-자본소득세 순세율). 거꾸로 이야기하면 개인 자본소득 순세율이 낮을수록 부는 집중되며, 개인 자본세금제도가 부자일수록 적게 실효세율이 낮게 나오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음 그림 3, 억만장자들의 순자산 대비 개인 자본 세율은 이에 대한 각국 추정치를 나타낸다.

미국(왼쪽 첫 번째)이 가장 높긴 하지만 미국 억만장자들의 실효세율 부담은 1년 치 순자산 증가분의 0.6% 정도이며, 노르웨이는 부유세(파랑색)로 과세조정을 하지만 0.3% 아래로 떨어진다. 스웨덴, 프랑스는 0.2%, 네덜란드는 0.1%보다 아래로 주저앉는다.

이렇게 된 원인은 현대 자산과세의 실패가 반영돼 있다. 보통 국가들은 부동산 보유세로 개인자본과세를 매긴다. 서민들에게 부동산은 부의 핵심이지만, 억만장자들에게 부동산은 그들이 가진 부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부자들은 도대체 얼마의 부를 쌓고 있는 것일까.

그림 4는 세계 상위 0.0001% 억만장자(약 3000가구)들이 1987년부터 2024년까지 전 세계 GDP에서 얼마를 자기들의 부로 쌓았는지에 대한 그래프다.

세계 상위 0.0001% 억만장자들은 1987년 전 세계 GDP의 3%에 달하는 부를 가졌는데,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저금리 바람을 타고 GDP 8%까지 올랐다. 2020년 코로나19 시기 다시 저금리로 돈이 풀리며 급증했고, 2024년엔 전 세계 GDP 13%를 넘겼다.

이를 통해 억만장자들의 순자산 연평균 상승률을 7.1%로 추정할 수 있는데, 이들에 대한 자본세율이 0.3%이고, 0.1%를 소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자산 수익률은 연평균 7.5%에 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가진 막대한 부에 대한 정당한 세금은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할까.

앞서 거듭 서술했듯이 부유세에 대한 정답은 ‘자산 부과’이다. 주크만 교수는 현행 과세체계로 이러한 억만장자 조세왜곡이 조정 가능한지도 살펴봤다(*기사 전개상 그림 순번은 일부 순차적이지 않다).

주크만 교수에 따르면, 둘 다 가능하지 않았다.

그림 9와 10의 파랑색 선은 현재 고소득국가 평균 세전소득 분위별 적용 세율을 뜻한다. 보다시피 오른쪽, 억만장자 수준으로 부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세율은 아래로 축 처진다.

부유하면 부유할수록 세율이 떨어진다는 뜻으로, 정상적인 조세체계가 되려면 오른쪽으로 가면 갈수록(부자일수록) 위로 우뚝 올라가는(세율이 높은) 그래프가 나와야 한다.

그림 9의 노랑색 선은 그래프 우상향을 위해 소득세율을 50% 이상 상향 조정한 선이다. 그러나 현재(파랑)처럼 그래프가 오른쪽으로 아래로 쳐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이유는 억만장자들의 부는 소득이 아니라 자산에 있고, 그들은 이미 과세소득을 낮출 만큼 낮췄다. 그래서 소득세율 조정으로는 억만장자들의 조세문란을 막을 수 없다.

상속세(유산세)는 어떨까. 그림 10은 준억만장자~억만장자의 상속세율을 40%로 올려놓을 경우를 추정했다. 그림 10의 노랑색 선(상속세의 조정 수준)이 그림 9의 노랑색(소득세율 조정)보다 그래프가 약간 더 위로 올라가긴 하지만, 여전히 그래프가 아래로 꺾인 것을 막진 못했다.

상속세는 사망할 때 1회 납부하는데, 시가평가가 원칙이라고는 하지만, 억만장자들 상속세에 이르면, 실제 시장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전직 관료‧법조가 얽힌 카르텔 부패 및 세무컨설팅에 의해). 또한, 복지재단을 세워 상속 재산 자체를 줄이는 수법은 한국과 미국, 동서양 모두 즐겨 쓰는 방법이다.

주크만 교수는 모든 상속재산 가치를 제대로 시장가치로 평가하고, 공제나 면제를 없애지 않는 한 상속세율을 올려도 부유할수록 세율이 낮아지는 현 조세체계 문란을 해소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주기적으로 자산에 대해 부과하는 부유세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까.

그림 5는 부유세가 현 글로벌 조세문란을 어떻게 교정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위의 그래프는 미국의 분위별 세전소득 그룹들의 평균 소득세율이다. 부유세는 2% 최저한세로 매기는 방식인데, 현행 체계에서 세전소득의 1%를 이미 냈다면, 나머지 1%를 부유세로 거두어 최소 2%의 최저한의 과세는 하자는 뜻이다.

여기서는 구간별 기울기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준억만장자(순자산 1300억 이상~1조 3000억원 미만)부터 파란색 선이 아래로 축 처지는 조세 문란이 뚜렷해지는데, 준억만장자를 ‘빼고’ 억만장자(순자산 1조 3000억원 이상)에게만 2% 자산 부유세를 부과할 경우 억만장자의 명목세율은 39%대로 올라가지만, 준억만장자는 명목세율이 30% 미만 아래에 위치하게 된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준억만장자부터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

그렇다면 부유세를 1%(빨강)나 3%(녹색)로 물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 부유세 3%는 당연히 오른쪽 곡선이 위로 올라가는 정도가 더 가파르게 될 것이다. 1% 부유세는 파랑색 선(현재)보다 아래로 처지는 기울기를 조금 위로 올리긴 하지만, 여전히 부유할수록 적은 세율을 적용받는 조세문란을 해결하지 못한다. 부유세 2%는 돼야 조세문란을 정상복구할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부유세 2%의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앞서 그림 4에서 세계 상위 0.0001% 억만장자(약 3000가구)들이 1987년부터 2024년까지 연간 세전 자산수익율이 7.5%이며, 0.3%p 정도를 직‧간접세로 지출(소득세‧법인세‧소비세 등)한다는 추정치를 얻은 바 있다.

부유세 최저한세 2%에 도달하려면 1.7%p를 추가로 거두면 되는데, 주크만 교수는 억만장자만을 부유세 2% 대상으로 할 경우 연간 세금수입 증가분은 약 2000~2500억 달러(약 260조~325조원) 정도라고 추산했다.

표1은 대략적 추산치인데, 부유세 최저한세 2% 과세대상에 준억만장자~억만장자를 포함해 그래프를 온전히 우상향 그래프로 복구하면 과세수익은 3020억 달러~3770억 달러(약 392.6조~490.1조원)로 보정된다.

◇ 글로벌 부유세의 강력한 힌트 ‘글로벌 법인세’

마지막으로 고민해야 할 주제가 있다. 조세회피를 어떻게 방지하느냐다.

화가는 도화지가 가만히 있어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 도화지가 저절로 찢어지거나 불규칙적으로 움직인다면 그림 그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업도, 경제도 정치‧외교‧사회란 도화지가 안정적이어야 잘 돌아갈 수 있다.

그러하기에 억만장자들이 사용하는 가장 극단적인 조세회피 방법이 저세율국가로 국적세탁(국적이전)을 하는 것이다. 소득은 이전할 수도 있지만, 국적세탁은 정말 위험이 크다.

하지만 상황은 조금씩 악화되고 있다.

그림 8은 타 국가 시민권을 취득한 글로벌 억만장자들의 비율인데 현재 억만장자 90% 이상이 자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국적세탁 억만장자의 비율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데, 2000년대 중반 약 5~6%에서 2024년 거의 9%까지 올라갔다. 주된 세탁 국가는 스위스‧모나코‧아랍에미리트 등 상대적 저세율 국가다.

몇몇 국가가 부유세를 도입할 경우 국적이전을 통한 조세회피를 걱정해야 할 수 있다.

주크만 교수는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대안을 내놨다.

부유세도 글로벌 법인세 최저한세처럼 글로벌 부유세 최저한세로 수용하되, 부유세 수용국가에서 부유세 비 수용국가로 국적을 이전할 경우 국적세탁 기간에 비례해 일종의 출구세를 매기는 방법을 제시했다.

세계 주요국들은 이미 글로벌 법인세 최저한세(디지털세, 미과세 이익에 대한 최저한의 세금부과)에 합의한 바 있다. 구글, 애플 등 다국적기업이 조세회피처로 본사 국적세탁을 통해 주요국에서 돈을 벌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국 매출만큼 과세권을 각국에 부여하는 방식이다. 과세수준은 법인세 15% 최저한세였다.

글로벌 부유세 최저한세도 글로벌 법인세 최저한세처럼 각국 매출만큼 과세권을 각국에 부여하는 방식을 차용할 수 있는데, 글로벌 부유세 과세권에 참여하는 국가에겐 과세 인센티브가 부여된다. 최저한세로 6을 내야 하는데 A국에서 1, B국에서 1, C국에서 1을 내면, 3을 각국의 과세율 1:1:1 비율에 맞추어 1, 1, 1씩 세금을 나눠주는 방식(과세권 배분)이다.

이런 방식을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도구는 순자산 실소유자 식별 정보다.

글로벌 법인세 최저한세 부과를 위해 각국이 기업에 과세정보를 요구하고, 검증하고, 과세정보를 상호교환하는 것처럼 글로벌 부유세 최저한세도 억만장자의 정확한 자산증가 측정을 위해 각국이 과세정보를 정밀작성, 검증, 보고 및 상호교환하되 다국적 기업 국가별 보고서에 주식소유 1% 이상의 *실소유자 정보를 추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보고서 원문에선 수익적 소유자들(eneficial owners)이라고 표현한다, 수익적 소유자란 주주명부상 소유자가 아니라 조세회피처나 차명주주 뒤에서 재산을 움직이고, 수익을 얻는 실소유자를 뜻한다).

◇ 보다 지속 가능한 세계화를 향해

G20을 포함한 세계는 이미 글로벌 법인세 최저한세란 어려운 과업을 상당수 진행시켰다. 이조차도 간접세인 이상 억만장자들의 부에는 제한적 영향을 미칠 뿐이다. 그렇기에 글로벌 부유세 최저한세 제안은 흐름상 정합성을 지닌다.

여기서 한 가지 근원적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부유세는 왜 거둬야 하는가’이다. 부자가 미워서? 아니다.

주크만 교수에게 G20 핵심 의제 연구를 맡긴 2024년 G20회의 의장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1945년 브라질 극빈층에서 태어났다.

그는 근면했지만, 아무리 일을 해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만 7세 때 땅콩을 팔고 구두닦이를 했으며, 11살 때 염색공장을, 14살 때 철강공장에서 일했으며, 18세 때 기계에 손이 끼어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그의 임신한 아내는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빛 한번 보지 못한 아기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그 역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지냈다.

2003년 브라질 대통령이 된 룰라 대통령의 가장 대표적 정책은 극빈층 아동‧청소년이 학교에 다녀야만 받을 수 있는, 현금 지원금을 지급하는 일이었다(보우사 파밀리아).

몇몇 경제학자들과 언론은 재정파탄이 날 거라고 비웃었고, 지원금을 받은 가정이 돈만 지원받고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아냥댔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취임 직전 브라질 세계 GDP 순위는 12위(2002년)에서 임기 마지막 해 8위(2010년)로 올라갔고,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은 12.5%에서 5.2%로 안정됐다.

한 나라의 발전과 성장에 가장 최선의 답은 모든 사람의 잠재력을 최대한 많이 발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생존의 위기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브라질 국민지원금 역시 연민이나 시혜 개념에서 시행된 것이 아니었다. 다수 국민의 성장잠재력이 올라가려면 아이들이 공장보다 학교에 가야 한다. 한국 부모들이 본능적으로 교육열에 집착하는 것 역시 생존의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브라질도, 한국도, 미국도, 현대 사회는 냉혹하다.

부자일수록 생존 난이도가 쉽고, 가난할수록 생존 난이도가 높다.

금융체계부터 조세체계까지 부자일수록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부자는 더 낮은 금리와 더 낮은 실효세율을 적용받는다. 부자들은 더 건강하고, 사회적 친교의 폭도 더 넓으며, 기회도 더 많다. 부자들은 쉽게 회사 임원이나 대표가 되지만, 서민들은 구직부터가 극한생존 난이도다.

이것이 지금 세계가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제구조로 퇴행하는 근본 이유이며, 그 핵심 현상이 불공평한 금융체계와 문란한 조세체계이다. 몇몇 지도자들은 힘을 강조하며 국민을 대립과 국제사회 고립으로 내몬다. 그들이 말하는 힘은 국민이 아니라 나만 잘되기 위한 힘일 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다 죽고, 부자만 살아남으면 세상은 잘 굴러갈까. 불가능하다. 최고의 팀은 베스트 일레븐이 아니다. 유전자는 다양성에 기반하며, 생존은 변화에 대한 적응이니까.

룰라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왜 부자들을 도울 때는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도울 때는 ‘비용’이라고만 말하는가.”

주크만 교수는 G20 부유세 보고서 결론부에서 이렇게 말한다.

“보다 지속가능한 세계화를 향해 – 초부자 부유세는 현대 조세제도의 주된 실패를 수정합니다. 그 자원으로 교육‧보건‧공공 인프라‧에너지 전환‧기후 변화 등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경제 번영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철저하고 포용적인 글로벌 논의 속에서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최근 국제조세협력의 진보 덕분에 억만장자에 대한 공통 과세가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됐습니다. 이를 구현하는 것은 정치적 의지의 문제입니다. G20 및 국제사회의 참여가 있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