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으로 내려간 간첩단

2024-11-19

최근 몇 년간 적발된 간첩단은 ‘창원간첩단(자주통일민중전위)’ ‘제주 간첩단(ㅎㄱㅎ)’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등이 있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전국 곳곳에서 등장한 이들을 보면 간첩 행태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우선 주로 동남아서 북한 공작원을 만난 게 눈길을 끈다.

창원간첩단은 2016년 3월부터 2022년 11월 사이 베트남 등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해 공작금을 받았다고 한다. ‘자주통일 충북동지회’도 2018년 캄보디아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했다. 이들은 국가 기밀·국내 정세 등을 탐지·유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간첩단도 2018년 캄보디아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충성 맹세를 했다고 한다. 이들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윤석열 정부 반대 투쟁 등을 해왔다.

이와 관련,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 출신인 하동환씨는 “공작원 접선 국가가 과거 중국에서 동남아로 바뀌었다”라며 “2014년 중국이 반간첩법을 만들어 외국인 간첩행위를 처벌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국정원에서 30년간 간첩 잡는 일만 하다 2022년 퇴직한 하씨는 최근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란 책을 냈다. 국정원 출신이 간첩 관련 책을 낸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이들 간첩단은 한결같이 재판 기피, 국민참여재판 신청, 위헌 제청 같은 방법으로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 창원간첩단과 제주간첩단은 기소된 지 1년 6개월이 넘었는데도 1심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충북동지회도 2021년 9월 기소된 뒤 1심 판결이 나는 데만 3년 가까이 걸렸다. 하씨는 “민변 등 이른바 ‘진보세력’이 ‘인권’ 등을 내세워 간첩 혐의자 재판에 개입한 게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이보다 더 두드러진 변화가 있다. 간첩단 활동 무대가 수도권이 아닌 지방이라는 점이다. ‘간첩의 로컬화’라 할 수 있다. 하씨는 “북한은 과거 수도권에서 지역으로 간첩조직을 확산해 나갔는데, (요즘은) 아예 지역에서 지하당을 구축한 후 수도권으로 진입하는 역 전술을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 ‘통진당 RO(혁명조직)’ 사건을 계기로 간첩이 수사 기관 감시가 소홀한 지방으로 내려가고 있다”고 했다.

또 2000년대 들어 NL(민족해방) 주사파 세력의 ‘반미·반파쇼’와 같은 과격한 주장이 국민에게 먹혀들지 않게 된 것도 간첩단 활동에 영향을 줬다고 한다. 이에 간첩단은 합법적인 단체나 정당에 침투한 뒤 반정부 분위기 확산과 분열 조장 등을 시도하는 추세다.

하씨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일상화한 안보 불감증을 걱정했다. 많은 국민이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느냐’며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부터 국가정보원 수사권까지 박탈당해 간첩 수사는 더욱 힘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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