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정원에 수백 알의 튤립을 심는다. 우리 자생식물이 아닌 까닭에 네덜란드에서 주문을 하는데 그 시기는 8월 정도다. 현지에서는 이때 알뿌리를 캐내 종별로 그 수량을 확인한다. 이렇게 일찍 캐낸다고? 놀랄 수도 있겠지만 알뿌리의 생애주기를 알면 이해가 쉽다. 튤립·알리움·수선화·크로커스 등은 이른 봄 피운 꽃이 지면, 이때부터 잎들이 열심히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든다. 그리고 이걸 땅속 줄기 끝에 저장을 하는데 이게 바로 ‘알뿌리’다. 열심히 일하던 잎은 6월이면 누렇게 지고, 이때부터 토실해진 알뿌리는 7, 8월에 휴면기를 갖는다.
이 휴면이 끝나면 농부는 알뿌리를 캐내 시장에 공급한다. 한국 수출을 위해 배가 출발하는 시점이 9월이다. 우리나라에 도착해 식물 검역까지 마치고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시점은 11월이다. 이때부터 땅이 얼기 전까지 알뿌리를 심으면 된다. ‘어? 이제 겨울인데 그 보드라운 알뿌리를 심는다고?’ 걱정은 되겠지만, 알뿌리는 4도 이하 온도에서 10주 이상 추위 경험을 하지 않으면 다음 해 봄이 와도 꽃을 피우지 않는다. 추위가 잠들어 있는 알뿌리를 깨우는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겨울은 알뿌리 식물에 동면이 아니라 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인 셈이다. 겨울이 오면 알뿌리는 잠에서 깨어나 포도당을 분해해 꽃눈·잎눈을 만들고, 마침내 어느 봄 적당한 날에 잎과 꽃대를 세우고 탐스러운 꽃을 피운다. 알뿌리 심는 요령은 이렇다. 알 크기에 따라 심는 깊이가 다른데, 대략 알 크기의 3배 정도로 보면 된다. 야생동물들이 알뿌리를 파먹을 가능성이 있다면, 흙 위에 철망을 덮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요 며칠 시작되는 겨울이 왜 이리 걱정스러운지 몸도 마음도 위축이 되었다. 하지만 튤립의 알뿌리처럼 어쩌면 이 추위가 나에게 시작을 알리는 깨어남일 수도! 그렇게 마음 고쳐 겨울을 맞아보려 한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