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 전호태, 최미선
역사학자 전호태 울산대학교 명예교수와 인문학 운동가 최미선 한약사가 만나 매달 한 차례씩 깊이 있는 지식을 재미있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시간을 가집니다. 사전 제작하는 인문톡쇼는 울산저널TV에서 영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최미선(이하 “최”): 안녕하세요. 다양한 주제의 역사와 인문 지식을 재미있고 유익하게 풀어가는 시간, 인문톡쇼. 오늘 일곱 번째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전호태(이하 “전”): 예 안녕하세요. 역사학자 전호태입니다.
최: 오늘 주제는 거울로 잡아봤어요. 교수님, 거울이라는 주제라 하면 떠오르는 단상이 있을까요?
전: 거울이라는 게 자기의 모습을 비추는 건데, 관련된 이야기는 상당히 많죠.
최: 혹시 하루에 거울을 몇 번이나 보세요?
전: 저는 거울을 안 봅니다. 화장실에서 손 씻을 때는 잠깐씩 보겠죠.
문학 작품에서 거울은 자아를 들여다보는 도구로 활용
최: 안 본다니까 할 말이 없네. 저도 거울은 자주 보지 않는 편이긴 한데. 나이가 들어가니까 이제 추잡해 보이기가 싫어서 최대한 자주 보려고 애는 쓰고 있는데 이게 습관이 안 되니까 여전히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교수님이나 저나 거울은 자주 보지는 않지만, 인문학적 거울, 역사적 거울을 오늘 깊게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거울은 문학 작품에서는 자아를 들여다보는 도구로 많이 활용하거든요. 역사적으로 거울이 처음 등장한 건 언제였을까요?
최초의 거울은 신석기 시대의 흑요석(화산암)
전: 거울이 처음 발견된 건 8천 년 전 정도 됩니다. 기원전 6천 년경에 흑요석 덩어리를 반으로 잘라서, 흑요석은 화산암인데 굉장히 반짝반짝해요. 그래서 그걸 반으로 잘라서 거울을 만든 게 터키에서 발견됐습니다. 이미 신석기 시대에는 거울을 보기 시작했다는 거죠.
최: 거울을 보기 시작했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전: 우리가 자신의 모습을 볼 수가 없잖아요? 상대가 내 모습을 보는 거지. 그런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랄까? 나는 누구일까? 그런 데 대한 생각들이 거울을 만들어내게 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최: 그러면 거울이 인류에게 끼친 영향은 지적, 역사적, 인문학적 영향.
전: 그렇죠. 굉장히 철학적이기도 하고 종교적이기도 하고.
최: 대단한 것 같아요. 청동거울이 처음이 아닌 흑요석 거울이라.
전: 그렇죠. 흑요석 거울이 출발이죠.
최: 흑요석 거울이 출발이고 그다음에 청동기 거울이 나오나요?
청동기 시대의 청동거울은 자신을 비추기 위해 계속 닦아야 한다
전: 그렇죠. 아마도 거울에 관해 생각하게 된 거는 물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보면서. 계속 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나르시시스트처럼 그런 경우가 나중에 신화적으로 정리가 되지만. 아마도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물이 아닌 것으로 비출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흑요석 거울이 등장했던 것 같고요.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면, 청동으로 거울을 만듭니다. 옛말에 ‘거울에 비친 것처럼 내 모습이 희미할지라도’ 이런 말이 나오는 거는, 청동거울에 자신을 비추면 깔끔하게 유리 거울처럼 나오지는 않거든요. 청동거울의 경우는 계속 닦아내야 해요. 녹이 스니까. 그러면서 깔끔하게 자신을 비추어 낼 수 있는 거죠.
최: 이게 마음의 수양에 대한 메타포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겠네요. 닦아낸다는 게.
전: 청동으로 거울을 만들고 나서는 거울의 기능에 주술성이 반영되기 시작해요.
최: 그 주술성이 무엇이죠?
전: 청동이라는 게 매우 만들기도 힘들고. 특별한 도구잖아요? 그래서 청동거울에 비치는 거는 사람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 즉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비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신, 사악한 존재, 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세계의 존재도 거울에 비친다고 생각해서 청동거울이 주술적 도구로 바뀌어요.
최: 생각나는 드라마가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 봤던 드라마인데 너무 강렬해서 지금까지 뚜렷하게 기억이 나는데요. 혹시 <옥녀>라는 드라마 아세요?
전: 잘 모릅니다.
최: 1977년도에 나왔더라고요. 제가 정말 아기였을 때 봤던 드라마인데, 거울만 보면 죽은 엄마가 나타나서 옥녀를 도와주는. 교수님 방금 주술성이라고 말씀하시니까.
청동거울의 주술성에서 거울 속 특별한 존재가 나타나는 거울 문학으로
전: 바로 그거예요. 그런 식으로 거울을 보면 거울 속에 다른 존재가 비치기도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존재하는 것을 비췄는데, 그다음에는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는 것. 예를 들어서 영혼까지도 비칠 수 있게 되는 거죠. 중국이나 한국이나 청동거울이 주술적인 도구로 오래 쓰이는데, 물론 화장하는 데도 사용이 돼요, 여성들이. 그러면서 거울 문학이라는 것이 생겨나고. 거울 속에 있는 특별한 존재가 나와서 나를 도와주기도 하고, 아니면 거울 속에 사악한 존재가 비쳐서 정체를 알아내기도 하고. 그런 것과 관련한 매우 많은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돌기 시작해요. 그것을 동아시아에서는 거울 문학이라고.
최: 거울 문학 하면 가장 유명한 게 백설 공주 아닐까요? 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예쁘니?
전: 그러니까 동양이나 서양이나 같은 거죠, 그런 면에서는.
최: 인간이 거울을 보고 그것이 나라고 인식할 때 자아가 생겼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유아기에 그런 자아가 생기는 거를 거울을 앞에다 대놓고 아이가 거울하고 놀고 있는지 아닌지를 보는 걸로 자아 형성이 됐는지 알아보는 기법도 있더라고요.
거울을 통해 자아에 대한 인식이 시작
전: 실제 심리학적이나 인류학적인 조사 과정에서, 예를 들어서 동물에게 거울을 비춰주면 처음에 굉장히 놀라요. 그걸 자신이라고 생각 안 하니까. 너 누구야, 이러면서 거울을 보고 막 짖는다든가. 그런 현상이 나타나면서 거울 속에 비친 것이 다른 존재라 여기던 단계를 지나가면 자아에 대한 인식이 시작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거울의 기능이 확산하기 시작해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는 거고. 그러면서 어느 순간 거울을 통해서 다른 세계로 간다든가 거울 속에서 다른 존재가 나온다든가. 우렁각시 이야기 같은 것도 거울 속에서 누군가가 나와서 나를 도와주는 그런 이야기도 있거든요.
최: 그러고 보면 저번 시간에 했던 문의 역할과 거울의 역할이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네요.
전: 그런 면이 있죠.
최: 아까 거울로 어떤 역할이 확대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중의 하나가,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소개하려고 가지고 왔는데, 에셔의 그림인데요. 구슬을 든 손이라는 그림, 혹시 아세요?

전: 잘 모릅니다.
최: 그림을 잠깐 묘사를 하자면, 그림 속에서 에셔라는 화가가 구슬을 들고 있는 손을 그렸어요. 나는 구슬을 보고 있는데, 이 구슬 안에는 온 세상이 다 들어 있는 거예요. 마치 화엄 사상처럼 온 우주를 담고 있는 구슬. 이 구슬을 보고 있는 나. 이걸 그린 그림이거든요. 그래서 아까 구슬 또는 거울, 확장성 우주를 담고 있는 거울, 이런 의미로 확장이 되는 것 같아요.
거울 문학의 현대화는 판타지 문학의 이세계(異世界)물로
전: 거울 문학이 현대화되는 과정이 있어요. 일본 같은 경우는 거울 속에서 다른 존재가 나와서 다시 그와 함께 거울 속의 세계로 들어가는. 다른 세계에 들어가서. 그걸 일본 현대 판타지 문학에서는 이세계물이라고 그러는데, 그런 데로 들어가서 거울을 통해서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근래에 상당히 널리 인기를 받는 평행 세계관 혹은 다중 우주론, 이런 것들이 있는데 그게 대개는 통로가 거울이에요. 그런 면에서 거울이 인간의 역사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도구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최: 기술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그다음에 철학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우리에게 거울이 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그림을 좀 많이 들고 왔는데, 또 하나는 <참회하는 막달레나>(1640-45), 조르주 드 라 투르의 그림인데요. 그림을 보면 한 소녀가 거울을 보고 있어요. 그런데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해골이에요. 이 소녀가 해골을 손에 들고 받치고 있고, 거울에 비친 건 소녀의 모습이 아닌 해골. 촛불 아래에서 보이는 그림인데요. 섬뜩하기도 하고.

전: 그 의미가 뭔가요? 본질을 드러내는 건가요?
최: 여러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보여요. 대비적인 면이 강하거든요. 빛과 어둠. 젊은 여인과 해골. 거울에 비춰짐. 그러니까 현실과 비춰지는 것. 이런 대비되는 영상들이 그 그림 안에 다 담겨 있거든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림이라서 오늘 들고 와봤습니다.
거울은 여전히 액막이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 그것과는 약간 다른 건데 전통적인 거울에 대한 개념에 비추어 보면, 지금도 중국 음식점 같은 데서는 문 현관 입구 높은 데 거울을 걸어놔요.
최: 이유가 뭘까요?
전: 사악한 존재가 들어오다 자기 모습이 비춰진 걸 알고 들켰다고 생각해서 도망치게 만드는, 즉 액을 막는 기능이죠? 중국의 운남 지방의 소수 민족 같은 경우는, 신부가 화관 장식을 하면 머리 위에 화관 한가운데 거울을 달아 놔요, 작은 거울을. 왜냐하면, 그런 지역은 산 높고 물 깊은 그런 골짜기, 이런 데서 서로 멀리서 통혼 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에 산 넘고 고개 넘어서 오는 신랑이 중간에 요괴한테 잡아먹혀서 그 요괴가 신랑으로 변신해서 왔으면 나도 위험한 거 아닌가? 그런 데 대한 두려움? 그런 것이 신부 이마의 화관 안에 거울을 걸어 놓음으로써, 서로 만나서 맞절하거나 이런 절차가 있잖아요? 그럴 때 신랑의 정체가 확실히 드러나는 거예요. 요괴인지, 진짜 자기가 평생의 반려로 삼을 신랑인지.
그런 식으로 일본 같은 경우는 신사의 한쪽 구석에 늘 신을 태우는 가마가 있어요. 가마 입구의 제일 위쪽에 보면 대개 오래된 청동거울을 빛이 반사될 수 있게 드러내서 걸어놓는 사례가 있어요. 1년에 한 번 신사를 중심으로 해서 축제가 있거든요? 마쓰리(まつり)라고 하는? 신을 모시고 그 가마를 앞뒤에서 메고 마을 사람 전체가 따라가면서 마을 전체를 한 바퀴를 돌아요. 이것도 일종의 액막이인데 마을 전체를 정화하는 과정이에요. 그 정화하는 과정을 거울도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게, 그 거울에 사악한 존재들이 비치면 그 마을 바깥으로 다 달아나는 거예요. 그 효과가 1년 간다고 믿기 때문에 1년에 한 번씩 그렇게 하거든요. 한 번 쭉 가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말로 결계가 쳐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계를 치는 기능의 핵심이 거울이에요.
인문학적으로 거울은 자아 성찰의 개념
최: 인문학적인 메타포로 본다면, 자아 성찰로 환원할 수 있을 것 같긴 하거든요? 왜냐하면 타자를 대하고, 싸움을 하거나 토론하거나 어떤 문제에 대해서 쟁점을 얘기할 때 상대방의 얼굴은 보지만 자신의 얼굴은 보지 못하잖아요. 만약에 그 앞에 거울이 있고 자신이 분노하는 모습, 또는 토론하는 모습을 본다면 상당히 토론과 대화의 양상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 자기 관리를 해야죠.
최: 어쨌든 그런 면에서 악마나 나쁜 세력들이 거울을 보고 놀라서 도망간다는 거 하고 메타포적으로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최: 거울이라는 아주 작은 소재를 가지고도 교수님과 이렇게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민정 기자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