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 실질적 성과 못 내면 나랏빚만 증가

2025-11-30

2026년도 예산안 총지출은 728조원으로, 전년 대비 8.1%나 증가한다.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외형을 키웠다는 점에서 무리한 확장재정이라 할 만하다. 예산안 3대 중점투자방향은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이 내세웠던 “모두가 행복한 사회, 역동경제, 국민안전·글로벌 중추국가”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단순히 몸집만 키운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주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늘어난 예산이 실제 어떤 목적으로 쓰이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728조 지출에 구체적 전략 없어

GPU도 교체 빨라 재원 낭비 우려

혁신을 자극하는 재정 지출 필요

정부 자료에 나타난 재정확대의 핵심은 ‘기술 주도 초혁신, 인공지능(AI) 대전환, 경제 대혁신’으로 요약된다. 10년 넘게 반복해 외쳤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던 혁신을, 이번에는 제대로 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구체적인 전략이 없어 현실성이 떨어진다. 지금껏 요원했던 디지털 경제혁신이나 AI 3강과 같은 목표가 5조7000억원의 연구개발(R&D) 예산 증액이나 4조1000억원의 산업지출 증가만으로 착실히 실현될 것이라는 주장은 신기루에 가깝다. 평가는 결국 지출 확대를 정당화하는 요란한 구호가 아니라, 재정사업의 실체에서 판가름 날 수밖에 없다.

AI 공공투자는 새 정부가 가장 강조하는 분야다. 전년 대비 3배나 증가했다고 하지만, 10조1000억원 수준의 지출은 미국 4대 AI 기업이 지난해 집행한 자본지출의 3%에 불과하다. 물량 투입 면에서 선제적 투자 효과를 논하기조차 어려운 규모다. 국내 대기업들조차 눈치만 살피고 있는 높은 위험성의 거대 시장에서, 나랏빚에 의존한 공공투자가 가져올 산업적 효과는 극히 불확실하다. H200과 블랙웰 칩 중심의 GPU 대규모 장기구매 사업만 해도 그렇다. 배분 방식이나 사용료에 대한 구체적 계획도 없이 일단 진행되는 성급한 모습이다. 현재 시장에서는 엔비디아 블랙웰 칩이 대세지만, 완전히 새로운 아키텍처의 루빈이 내년 출시되면 판도가 크게 뒤바뀐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구글의 연산 전용 AI칩(TPU) 등장도 변수가 되고 있다.

AI 칩의 감가상각 속도는 지나치게 빠른 것으로 악명 높다. 정부가 계획하는 구매 사업이 완료되는 3년 후면, 기존에 구입한 GPU는 이미 낡은 부품으로 전락한다. 새 부품 교체 필요성이 곧 강하게 대두할 게 뻔한 상황에서, GPU 구매 사업은 소중한 재원 낭비로 끝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급변하는 첨단기술 분야에서 시장에 대한 전문적 이해가 부족한 공공부문이 연 단위의 느린 예산 결정을 통해 민간 부문을 선도하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AI 투자를 다년간에 걸친 토건 사업과 동일시하는 착각과 다름없다. 조급한 편성으로 AI 예산 관리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중복을 방지하는 장치조차 없으며, 대규모 사업임에도 예비타당성조사조차 면제됐다. 양적으로 확대되는 R&D 사업 분야의 관건은 질적 성과를 어떻게 높일 것인가다. 신속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며 예비타당성조사 제도를 전면 폐지하고 사후 성과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개악이 되지 않으려면, 평가 책임을 새로 맡은 과기정통부 산하 R&D 혁신 평가위원회의 체계적이고 독립적인 사후 모니터링이 충실히 확보되어야 한다. 국책과제의 대형화 방향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2000개에 달하는 소액 연구과제에 재원을 배분하고 있어, 파편화 부작용을 따져 사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소상공인 지원사업과 관련해, 상환 연기나 대환대출 등 단기 생존 보호에 치중한 과거 방식을 답습하는 것은 문제다. 이런 방식은 자영업자의 실질적인 경영환경을 개선하거나 구조적 취약성을 해소하지 못한 채, 오히려 개인 채무만 늘리고 재정 부담만 증대할 가능성이 높다. 전국적 확대가 강행되는 지역사랑상품권 제도도 마찬가지다. 지역별 경제 여건과 소비 패턴 차이가 무시됨으로써 단순 국비 보조 사업으로 인식될 위험이 크다. 또한 정책 목적에 대한 합의나 효과 검증 체계도 없이 무조건 시작하고 보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도 문제다. 먼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논거부터 제시해야 하며, 명확한 재원 대책 없이는 사업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 답해야 할 것이다.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12월 2일)까지 국회의 엄격한 심의가 요구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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