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국내 은행들이 유형자산 등 동산(動産)을 담보로 중소기업들에 내준 대출의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고금리 상황이 길어지면서 채무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늘어나자 은행권이 회수 불확실성이 높은 동산담보대출을 보수적으로 취급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3일 은행연합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시중은행 동산담보대출 잔액은 총 9132억1300만원으로 집계됐다. 2023년 같은 기간 9554억9600만원을 기록, 1년새 4.42%(423억원)가 줄어들었다.
동산담보대출은 토지 등 부동산담보 대출과 반대로, 생산설비 같은 유형자산이나 원재료·완제품·매출채권·지적 재산권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상품이다. 은행권 동산담보대출은 지난 2012년 '동산·채권 등의 담보에 관한 법률(동산채권담보법)' 제정에 따라 2012년 8월에 시작했다. 그러나 부동산에 비해 담보 가치를 산정하기 어렵고, 물건을 팔아 원금을 회수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불확실성으로 은행들에 반감을 샀다.
이후 2018년 8월 금융위원회가 동산담보대출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제도 개선을 추진하면서 점차 수요가 늘기 시작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중소기업 수요는 급격히 증가했다. 기존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으려다 신용도가 낮아 거부 당한 기업들도 그동안 좀처럼 쓰지 않았던 동산 대출로 은행에서 자금을 수혈하기 시작했다. 실제 지난 2021년 9월 말 6802억8800만원이던 시중은행 동산담보대출 잔액은 1년 만에 9261억9100만원으로 36.1% 급증, 2023년(9554억9600만원)까지 상승세를 이어갔다.
꾸준히 불어나던 동산담보대출은 고금리 기조가 최고점에 이른 지난해 하반기 감소세로 돌아섰다. 9월 말 기준 3년래 첫 하락세다. 금융비용이 크게 뛴 데다 매출도 급감하면서 중소기업들의 대출 상환 여력이 크게 떨어지자 은행들이 회수 불확실성이 높은 동산담보대출을 보수적으로 취급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21년 8월부터 2023년 1월까지 0.50%였던 기준금리는 같은 해 하반기 3.50%까지 치솟았다.
현재 당국은 동산·채권·지식재산권을 담보로 하는 대출에 부실이 발생하면 은행에 면책권을 주는 방식으로 동산 대출을 장려하고 있다. 다만 은행들이 담보권을 실행하려면 경매 이외에도 사적 처분이나 자체 취득을 선택해야 하는데, 경영 여건 악화 속 매수자를 찾기도 쉽지 않아 은행이 떠안아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은 부담이다.
금리 인하 사이클이 예상보다 둔화하고 있는 데다 고금리 잔존 효과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올해도 동산담보대출 감소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자산 40%가 동산이기 때문에 동산담보 비중을 늘리면 자금을 확보하는 데 수월했지만 현재는 경기 여건이 좋지 않아 상황이 달라졌다"면서 "동산담보대출 상품의 불확실성이 높아져 은행과 중소기업 모두에게 이전 만큼의 실효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