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교역 진흥을 위해 창설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한국이 정식 가입한 것은 1967년이지만, 실은 한국전쟁 시기부터 GATT 가입이 추진된 바 있다. 박노형·정명현의 연구에 따르면 1950년 9월 제네바에서 개최된 GATT 회원국(체약국) 회의에 주영공사가 참석했고, 약소국인 한국이 유리한 조건으로 GATT에 가입하는 데 회원국 3분의 2가 동의했다. 그러나 전시 상황으로 인해 의정서 서명을 몇차례 연기한 끝에 가입이 무산됐다.
분단과 전쟁을 겪은 한국은 경제성장을 위한 밑천이 없었던 탓에 수출이 국부(國富)의 유일한 축적 경로로 여겨졌다. GATT 가입으로 한국은 시장을 적게 개방하면서도, 회원국들의 개방된 시장을 활용하는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생활수준이 낮고 경제발전 초기에 있는 회원국들을 배려해 수입제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특혜(GATT 18조B항)가 한국에 적용된 것이다. GATT 가입은 한국이 공격적인 ‘수출입국’이 되는 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다. GATT 가입 5년 만에 수출 규모가 66위에서 44위로 22계단 도약했다. 1995년 GATT를 이은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한국은 서비스교역·정보통신 부문에서 기회를 찾았고,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후 대중국 교역도 급증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이 만성화하고 보호무역주의가 대두하면서 ‘개방형 통상국가’ 한국의 전도가 불투명해졌다. 코로나19로 공급망 불안이 커지자 미국은 제조업 유치에 사활을 걸었고, 2기 트럼프 정부는 관세를 무기로 이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상품과 자본, 노동력이 자유롭게 오가는 세계화 이점을 최대치로 누려온 한국의 경제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25일 “세계무역기구 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 것은 기업들이 지금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엿보게 한다.
한국 경제는 여러 고비들을 대체로 잘 넘겨왔지만, 지금 마주한 상황은 파천황(破天荒)의 지혜를 끌어모아도 극복하기 어려운 절체절명의 위기다. 내란 사태로 인한 국정 공백이 장기화하는 건 그런 점에서 더욱 뼈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