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수십 년 간 물가 안정에 기여했던 ‘값싼 상품의 시대’가 끝났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하며 전 세계 주요국들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미국에서 관세 여파로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잇따르는 양상이다.
3월 30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과 미 노동부에 따르면 2019년 12월 미국의 핵심 상품 소비자물가지수는 2011년 12월 대비 1.7% 하락한 것으로 집계된다. 의류, 자동차 등으로 구성되는 주요 상품 가격의 동향을 보여주는 지표인데 코로나19 전 2010년대 미국의 상품 가격은 사실상 오르지 않았다는 의미다. 기술 및 생산성 향상과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저가의 중국산 물건이 유입되면서 상품물가를 크게 낮춘 것으로 분석된다.
일반적으로 물가 하락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 기간 연 평균 2.7%씩 상승한 서비스 가격 인상 효과를 상쇄하며 전체 소비자물가의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급등한 상품물가는 이후 안정세를 찾아갔지만 최근 다시 상승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전문가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도 최근 “상품 인플레이션이 0에 가까운 수치가 이어졌던 것에 비해 지금은 다시 상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경제 환경을 볼 때 상품가격 하락으로 물가 안정을 이어가던 ‘황금기’는 사실상 끝났다고 평가한다. ‘제 2의 중국 효과’를 기대할 만한 요인이 보이지 않는 데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물가를 크게 흔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앞서 중국, 멕시코, 캐나다 등을 상대로 고율 관세 방침을 밝힌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일 상호관세 계획도 내놓을 예정이다. 캐나다의 PCB 글로벌 트레이드 매니지먼트의 브리아나 라이니거는 “무역 활동이 지금처럼 불안하고 혼란의 반응을 보인 적은 없었다”고 전했다.
금융가에서도 미국의 물가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상승률 전망을 2.7%에서 3%로 높였다. 스티븐 블리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상품 물가 지표를 보면 2010년대와 같은 디플레이션 충격이 없을 것임을 알 수 있다”며 올해 인플레이션 예상 수준을 연준 목표(2%)보다 높은 3%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