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키우고, 살아내야 하는 3040 부모들
전세는 불안하고, 매수는 버겁다
답 없는 주거의 방정식 앞에서 오늘도 깊은 한숨이 이어진다

편집자주|‘육아동네 리포트’는 어린 자녀를 키우는 3040 부모들의 삶과 선택을 따라갑니다. 아기 울음 한 번에 바뀌는 집, 거리, 인생의 궤도까지. 변화의 중심에 선 가족의 이야기를 8주에 걸쳐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온라인을 통해 전해드립니다.
“1억이나 올려달라고요?”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사는 김지혜(37·여)씨는 전셋집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5억500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말을 들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두 살배기 아이를 키우며 사는 김씨 부부는 이미 한 차례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상태였다. 집주인은 이번에 실거주 사유 없이 기존보다 1억원을 더 요구했다.
계약 만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김씨의 밤은 부동산 앱과 깊은 한숨으로 채워졌다. “이 돈이면 차라리 집을 사는 게 낫지 않을까”와 “그렇다고 당장 이사를 감당할 수는 없잖아”사이에서 고민이 이어졌다.
부부는 시간을 내서 서울 외곽 아파트 매물을 뒤졌다. 몇 군데 임장을 다니며 발품도 팔아봤지만 마음에 드는 단지는 대부분 6억원을 훌쩍 넘었다. 아이를 키우기에 적절한 입지까지 고려하면 선택지는 더욱 좁아졌다.
지금 내 집 마련을 하자니 대출을 받아야 하고 이사도 해야 하며 아이의 어린이집도 다시 대기 걸어야 한다. 김씨는 “그 모든 걸 감수할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결국 부부는 결정을 미뤘고 전세계약을 다시 연장하기로 했다.
3040 육아 세대는 일도 하고 아이도 돌보고 주거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삼중고 속에 놓여 있다. 전세가와 매매가 모두 높은 서울에서 자녀 양육까지 고려하다보면 선택지가 많지 않다
3일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30·40대 육아 가구의 자가 보유율은 전국 평균 62.6%지만 서울로 범위를 좁히면 44.5%에 불과하다. 다섯 가구 중 세 가구는 '남의 집'에 살고 있는 셈이다.

김현우(37)·김다은(36)씨 부부는 ‘영끌’로 ‘남의 집’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한 경우다. 김씨 부부는 지난해 6월, 송파구 가락동의 한 구축 아파트를 매수했다. 그들은 “더 기다리면 집값이 더 올라 기회를 잃을 것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 부부는 맞벌이였고 다은 씨는 금융 공공기관에 재직 중이었다. 결국 은행 대출 한도를 최대한 끌어올린 끝에 겨우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올해 9월 출산을 앞둔 다은 씨는 “주말마다 아이와 놀이터에 나가 노는 상상을 하며 매수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찾아 서울을 벗어나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경기도 구리시 갈매동의 아파트로 이사한 이정훈(39)·최지은(37)씨 부부도 한때 서울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 집을 고민했지만 결국 서울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씨는 “서울에서는 도저히 주거비 감당이 안 됐다”라며 “회사랑 좀 멀어지더라도 아이 키우기 괜찮은 동네에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맞벌이인 이들 부부는 출근 시간과 아이 어린이집, 대출 부담 사이에서 매일같이 계산기를 두드리다가 지난해 말 갈매지구의 30평대 아파트를 6억8000만원에 매수했다.

이씨는 “서울에선 같은 조건의 집이 2억원 넘게 비쌌고 양가 부모님 도움 없이 사려면 서울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며 “지금은 통근 시간이 20~30분 늘었지만 이제 집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매매든 전세든, 3040세대에겐 주거비 부담이 결코 가볍지 않다.
2022년 국토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30대 가구의 월평균 주거비는 약 58만2700원, 40대는 66만300원이다. 가구원 수를 반영해 균등화한 수치는 각각 약 85만원, 78만원.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은 30대 19.48%, 40대 17.64%로, 각각 5명 중 1명, 6명 중 1명꼴로 월소득의 2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3040부부 중 절반 이상이 맞벌이 중이며, 주거 안정 없이는 외벌이로는 버티기 힘들다.
김은선 직방 랩장은 “3040세대는 집을 매수할 때 출퇴근 거리, 생활 인프라, 부모와의 거리, 전세가율, 매매가 수준 등 수많은 조건을 고려한다”며 “이 때문에 서울 인접 수도권으로 눈을 돌리거나 실질적인 삶의 안정성에 무게를 두는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편 예고|아이를 키우는 일,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만 가능한 시대입니다. 조부모가 있는 동네로 이사하고, 시터 구하기 쉬운 지역을 찾습니다. 아파트의 브랜드나 평형보다 더 먼저,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를 따집니다. 요즘 3040 육아부부들은 돌봄의 가능성을 기준 삼아 집을 고릅니다. 다음 주 ‘육아동네 리포트’에서는 조부모와 시터, 그리고 돌봄 인프라가 주거지를 결정하는 시대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글·사진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