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신혼’인 ‘부부’가 아니어도 된다면

2025-05-02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 여느 때처럼 수백만 가구 주택 공급 공약이 쏟아질 것이다. 조세나 개발 규제처럼 논쟁이 예상되는 정책과는 달리, 부담 가능한 주택을 많이 짓겠다는 약속에 반대할 유권자는 드물다. 남발되는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택 공급 대상을 설정하는 기준도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신혼부부’다.

대다수 주택 공약은 청년과 신혼부부를 묶어 발표한다. 청년이면 청년이고 부부면 부부여야 할 텐데 혼인 기간 7년 이내 2인 가구만 연령대와 무관하게 특별히 묶는 정책적 목표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는 않다. 단순히 출생률 때문인가. 결혼이 출산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시대는 지나갔다. 가족이라는 틀, 육아 문화, 노동 환경 등 복합적 요소를 배제한 채 혼인 7년 이내란 기준으로 인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주거 정책의 대상 역시 신혼 여부가 아닌 실제 생활 단위를 기준으로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가령 2인 가구를 대상으로 하면 결혼을 준비하는 가구는 물론 한부모 가구와 동거 가구까지 포괄할 수 있다. 아이가 성장하기 좋은 환경이 필요하다면 아동 양육 가구에 입주 우선권을 줄 수도 있다.

청년에서 신혼부부로 이어지는 주거 사다리의 더 심각한 문제는 현대사회의 다양성을 외면하고 청(소)년 세대가 근대적인 생애 이행기를 따를 것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 정규직 취업, 결혼, 출산으로 이어지는 경로는 더는 보편적이지 않다. ‘정상 가족’ 중심의 기준은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을 외면할 뿐 아니라 그들을 사회적 낙오자로 몰아갈 위험을 키운다. 실제로 신혼부부 대상 사업에서 소득 초과 비율이 다른 대상군에 비해 유독 높은 것도, 누가 결혼을 할 수 있고 누가 배제되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한국과 경제 수준이 비슷한 유럽 국가들에서는 혼인하지 않은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신혼부부’라는 구분법으로 한국 사회가 놓치고 있는 권리나 일상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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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여부를 넘어서는 새로운 대상층 설정은 ‘제1차 청년정책기본계획’ 수립 때부터 지난 5년간 꾸준히 제안됐지만 여전히 기본 방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틀을 바꾸는 것은 기존 대상을 배제하자는 뜻이 아니다. 결혼을 준비하거나 출산을 앞둔 가족이 불이익을 입는 변화가 아니다. 기준을 새롭게 설정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1인 가구, 비혼 가구, 탈가정 청소년, 외국인 등 지금까지 정책 사각지대에 있었던 다양한 주체들을 포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내일을 향한 다른 메시지가 필요하다. 결혼만이 유일한 정상 경로라는 기준은 오히려 선택지를 가르는 벽이 된다. 곧 발간될 대선 공약집은, 적어도 지난 시기의 판박이로 머물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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