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태종의 교훈 ② 정관지치

2025-11-26

55년 전, 학창 시절에 지도교수이신 조일문(趙一文) 선생님께 세배를 갔더니 ‘수불석권(手不釋卷)’이라는 글씨를 보여 주시면서 앞으로 공부하며 마음에 새겨두라고 말씀하셨다. “내 평생토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리라”는 당태종(唐太宗·사진)의 좌우명이었다. 세종대왕의 언행록과 이이(李珥)의 글에도 보이는 것을 보면, 그의 가르침은 수양산 그늘이 강동 80리에 드리운 듯하다.

당태종은 어려서부터 영민했고, 공부하기를 즐겼다. 여러 차례 정복 전쟁을 치르면서 지금의 화하(華夏) 문명과 중앙정부의 기틀을 마련했다. 성이 이씨여서 같은 성바지인 노자(老子)를 숭상하며 불교를 박해했다. 연호를 정관(貞觀)이라 지은 것을 보면 불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름이 세민(世民)인 것은 그가 제세안민(濟世安民)의 꿈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도와 당나라의 창업에 기여했지만, 둘째 아들이기 때문에 왕위계승권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형과 아우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행실이 그리 반듯한 인물은 아니었다. 아들 가운데 마땅한 인물이 없어 9남 이치(李治)가 왕위를 이었다.

후세의 역사가들이 자신을 나쁘게 여기리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으나 “정치인은 집권의 사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 업적으로 평가한다”고 생각했다. 처첩 스무 명을 거느렸고, 14남 21녀를 낳았다. 그는 평생 이질을 앓아 그리 건강한 편이 아니어서, 51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당태종을 중국 문명의 패왕이라고 칭송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책을 들고 있었다. 그는 전쟁에 나가면서 말 위에서 글을 읽었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보면, 통치자의 비극은 책을 읽지 않은 데 있다. 골프 치고 술 마실 시간에 당태종의 행적을 적은 『정관정요(貞觀政要)』를 한 번 읽어 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