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오케스트라 빅매치···성적표는?

2025-11-24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베를린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필),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콘세르트헤바우),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체코필). 10월 중순부터 한 달 간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들이 서울에서 벌인 ‘빅매치’가 지난 20일 빈필 공연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이들은 저마다 독자적인 개성과 매력으로 클래식 음악 팬들에게 더없이 풍요로운 가을을 선사했다.

■ 영원한 라이벌, 베를린필과 빈필

‘베를린필이냐 빈필이냐.’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를 묻는 질문은 여전히 이렇게 시작될 수밖에 없다.

아시아 투어에 나선 해외 오케스트라는 시차 등의 문제로 앙상블에 난조를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상임지휘자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한 베를린필은 첫날(11월7일) 첫곡(바그너 ‘지그프리트 목가’)부터 완전무결한 합주력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메인 프로그램 브람스 교향곡 1번은 올해 밤베르크 심포니와 베를린 방송교향악단도 연주했지만, 베를린필의 깊고 진한 사운드로 연주되는 브람스는 차원이 다른 거인의 발걸음을 연상케 했다. 이튿날 버르토크의 ‘중국의 이상한 관리 모음곡’과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는 더더욱 경이로운 연주였다.

황장원 평론가는 페이스북을 통해 “극강의 연주력과 페트렌코의 극단적으로 정교하고 치밀한 앙상블 제어력, 그리고 고도의 극적 설계가 어우러진 최고의 공연이었다”면서 “(페트렌코와) 단원들과의 파트너십이 본궤도에 올라섰다는 사실을 확인한 듯하다”고 평가했다.

일본에서 총 8회의 공연을 소화하고 서울에 도착한 빈필은 11월19일 예술의전당에서 크리스티안 틸레만의 지휘로 슈만 교향곡 3번과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연주했다. 슈만 1번에서는 앙상블이 다소 흐트러졌으나, 브람스 4번에서 특유의 비단 같은 현악 사운드가 살아나 아쉬움을 달래줬다. 앙코르로 연주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본 공연 못지않은 포만감을 선사했다.

하이라이트는 20일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이었다. 틸레만은 빈필과 함께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유일한 지휘자다. 실연에서 이들이 보여준 사운드는 기대를 초월했다. 끝없이 절정을 향해 올라가다 마침내 거대한 음향의 구조물을 완성하는 5악장은 내한 공연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마지막 음이 울린 후 지휘자가 지휘봉을 내릴 때까지 10초가량 이어진 침묵은 이날 관객들이 받은 충격의 강도를 방증하는 듯했다.

허명현 평론가는 페이스북에 “그 유명한 피날레는 음량으로 뭔가를 압도하는게 아니라 말그대로 빛이 터지는 순간들이었다”면서 “베를린필이 이들보다 더 정교한 음악을 할진 몰라도, 빈필이 가진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를 따라갈 순 없다”는 후기를 남겼다.

■ 시험대에 선 슈퍼스타 지휘자, 콘세르트헤바우

앞서 11월5일과 6일 열린 콘세르트헤바우 내한 공연은 2027년부터 수석지휘자를 맡을 예정인 슈퍼스타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와 함께 하는 첫 아시아 투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메켈레는 2027년부터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도 맡을 예정인데, 스물아홉에 불과한 지휘자가 최정상급 오케스트라 두 곳을 동시에 책임지는 것은 음악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5일에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버르토크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을, 6일에는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과 말러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콘세르트헤바우는 총주에서도 결코 거칠어지지 않는 특유의 온화하고 세련된 사운드로 청각적 쾌감을 선사했다.

다만 브람스에서는 협연자와 호흡이 맞지 않는 순간들이 나왔고, 말러에서는 탁월한 합주력에도 불구하고 연주 자체의 설득력에서는 2023년 라이프치히 말러 페스티벌 당시 정명훈과의 연주와 비교해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커튼콜에서 단원들이 관객들의 박수를 지휘자에게 먼저 돌리는 훈훈한 풍경은 이들이 만들어갈 미래에 긍정적 기대를 품게 했다.

■ 거장의 위엄, 체코 필하모닉

우리 시대 최고 거장 중 한 명인 세묜 비치코프가 이끄는 체코필의 연주도 특기할 만하다. 이들은 지난달 28일과 29일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자신만의 색채를 지닌 몇 안 되는 오케스트라인 체코필은 ‘나의 조국’을 통해 정통 체코 사운드의 정수를 보여줬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혼연일체가 돼 순도 높은 슬라브적 정서를 표현한 차이콥스키 5번은 ‘역대급 연주’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2악장 도입부 호른 솔로의 아름다움은 많은 관객들에게 올해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각인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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