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사라진 우승 트로피’ 복원 기념식
대한민국 1호 프로골프선수
1941년 일본오픈 제패 위업
세상 떠난 지 20여년 지나서야
日측 동의로 국적·이름 정정
한국 골프의 선구자이자 ‘골프계 손기정’으로 불린 연덕춘(1916∼2004) 전 한국프로골프협회 고문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넘어 하늘에서 함박 웃을 수 있게 됐다. 고인이 일제강점기인 1941년 일본프로골프 최고 권위 대회인 일본오픈에서 우승할 당시 ‘일본인 노부하라 도쿠하루(延原德春)’로 기록된 우승자 이름과 국적이 ‘한국인 연덕춘’으로 고쳐지기 때문이다.

5일 골프계에 따르면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 1호 프로골프선수 고 연덕춘 역사와 전설을 복원하다’ 행사를 열고 기록정정과 함께 유실된 연 전 고문의 일본오픈 트로피 복원 기념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세계일보 2024년 12월11일자 22면 참조>
이 행사에는 김원섭 KPGA 회장과 강형모 대한골프협회(KGA) 회장, 야마나카 히로시 일본골프협회(JGA) 전무 등이 참석한다.
지난해 취임 이후 이번 복원 사업을 주도한 김 회장은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지난해 말 JGA 측을 만나 연 고문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며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있는데 한국과 일본이 가진 불편한 관계와 아픈 역사를 바로잡아야지 않겠느냐고 정중하게 설득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이후 일본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결국 연 고문의 (일본) 국적과 이름 기록을 (한국 국적과 이름으로) 바꾸는 데 JGA 측 동의를 얻었다”고 했다.
JGA는 지난 6월4일 이를 확정하는 공문을 KPGA에 전달했다. 공문에는 “두 나라 골프계가 돈독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내용도 담았다. 김 회장은 “JGA 주요 임원 중 철강회사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꽤 있었는데 그들과 친분이 있는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등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다”고 협상 뒷얘기를 전했다.
1916년 2월 경기도 고양(현 서울 성동구 뚝섬)에서 태어난 연 전 고문은 한국 골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초등학교(당시 소학교)를 졸업한 뒤 1932년 우리나라 최초 골프장인 경성컨트리클럽(현 서울 광진구 능동 부근)에서 캐디로 일하던 친척을 만나러 갔다가 보조 캐디가 돼 처음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골프장에서 일하며 어깨 너머로 남들의 플레이를 보던 그는 골프에 흥미를 느꼈고, 한 일본인 프로로부터 아이언 하나를 선물받은 뒤 밤새 연습하며 프로 골퍼의 꿈을 키웠다. 그는 1934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1935년 2월 일본 관동골프연맹으로부터 한국인 최초 프로 자격증을 취득하며 일본에서 투어 생활을 시작했다. 마침내 25살 때 제14회 일본오픈 우승을 차지하며 열본 열도를 놀라게 했다. 불과 5년 전 손기정(1912~2002)이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과 함께 일제강점기 아래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크게 드높인 역사로 기록된 것이다. 6·25전쟁의 상흔이 아문 1956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던 고인은 1958년 42세로 한국프로골프선수권에서 우승한 뒤 은퇴했다. 1968년 KPGA 창립에 힘을 보탠 그는 KPGA 1호 회원이고, 2대 회장을 맡아 한국 골프 행정 기틀을 닦았다. 그가 1930년대 사용하던 드라이버와 롱아이언, 숏아이언, 퍼터는 국가문화유산으로 등록됐지만 일본오픈 우승 트로피는 전쟁 여파 등에 사라졌다.
KPGA는 그의 업적을 기려 1980년 제정한 ‘덕춘상’(최저타수상) 트로피를 새로 제작하고 역대 수상자 이름까지 새겨넣는 등 상의 권위를 높이기로 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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