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번째 급식노동자 폐암 사망…“집단 파업 아닌 집단 사망해야 들여다볼 건가”

2025-10-08

13년차 급식 노동자 정경숙씨는 올해 추석 명절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 차려진 학교 급식 노동자의 분향소에서 보내기로 했다. 지난 9월22일 학교 급식실 노동자가 또다시 폐암으로 사망한 것이 알려지자 정씨와 동료들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폐암 산재 판정을 받은 급식노동자는 175명이며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15명에 달한다.

지난달 숨진 A씨는 충북의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24년차 조리사였다. 지난 8월 폐암을 진단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던 중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세상을 떠났다. 유치원 조리실에서 10년 넘게 일하다 폐암으로 숨진 고 이영미 조리실무사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순직을 인정받은 지 20여일만에 전해진 또다른 사망 소식이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지난 1일 국회 앞에 분향소를 차리고 연휴 동안 급식실 노동환경 개선 대책을 촉구하기로 했다.

급식실에서 튀김이나 볶음 요리를 도맡는 급식노동자들에게 폐암 발병 우려는 남일이 아니다. 고온 가열한 기름으로 요리할 때마다 나오는 발암물질 조리흄은 폐암 유발의 주범이다. 오븐으로 조리하는 방법도 있지만 학생들의 튀김 선호도가 높다 보니 튀김 반찬을 매주 2~3번 이상 요리한다. 튀김 요리를 교대로 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근무 인원이 충분하지 않아 3~4시간을 꼬박 튀김에 써야 할 때가 부지기수다.

일부 학교 관리자는 닭 다리 한 조각도 바삭해야 한다며 3번까지 튀길 것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정씨는 “하반신이 다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튀김 솥에 재료를 하나씩 넣는다”며 “마스크를 쓰지만 튀김 냄새와 조리흄을 폐까지 들이마시게 된다. 튀김하는 날은 밥을 먹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급식실 노동 환경 개선 작업은 여전히 더딘 상태다. 교육부는 2023년 학교급식실 조리환경 개선 방안을 발표하며 2027년까지 개선 완료를 목표로 잡았다. 그러나 교육공무직본부는 “개선 작업이 2년 반이 지나도록 전체 학교의 41% 수준에 머물러있다”며 “그나마 2025년 환기시설 개선 예산은 전년 대비 약 1280억원, 전국 평균 21.77% 감소해 교육청의 실행의지를 의심케 한다”고 했다.

정부 차원의 대책이 더딘 탓에 급식노동자들은 작업 환경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자구책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대전 둔산여고 조리사들이 요구했던 튀김 반찬 주 2회 제한과 냉면 그릇 사용 금지 등이 대표적 예시다. 튀김류 제한이나 조리방법 개선 등은 앞서 교육부가 발표한 개선 방안에도 들어있는 내용이지만 현장에선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학교의 급식노동자 파업은 “아이들을 볼모로 한다”는 반발에 직면했고, 교사와 학부모들이 참여한 학교운영위원회는 석식 중단을 결정했다.

석식 중단의 주요 이유는 조리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시 급식의 질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지난 6월 학운위는 “중식에 대한 질적 향상을 담보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학부모 신뢰를 회복하고, 향후 석식 재개에 대해 다시 논의하는 것을 포함해 2안(석식 재개 반대)으로 가결됐다”고 밝혔다. 둔산여고가 속한 대전지역 급식 조리사들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지난달 30일부터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었지만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파업 이후 조리사와 학생·학부모의 갈등이 부각되는 동안 교육청과 학교 관리자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뒷전으로 밀렸다. 이민정 교육공무직본부 노동안전국장은 “파업 현장 내부에서도 해결과 조정의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언론 등 외부에서 노동자가 생떼를 쓰듯 묘사하면서 불을 부었다”며 “대전시교육청과 학교관리자 등 문제가 뭔지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해결해야 하는데 정작 이들은 쏙 빠져버리고 책임 없는 이들끼리 싸움을 붙인 격”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반복되는 급식실 산재를 막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종합대책을 요구했다. 이들은 “교육부와 교육청은 최근 노사교섭에서 대책 요구에 대해 ‘검토 중’이라는 형식적 답변만 했다”며 “반복되는 구조적 죽음을 막기 위해선 최소한의 장치인 학교급식법 개정안이라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다. 지난 7월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학교급식법 개정안은 노동자 1인당 적정 식수 인원 기준과 안전 설비를 갖추도록 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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