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연금은 인플레이션을 이겨야 합니다.”
김태우 하나자산운용 대표는 1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자산 가격이 오르는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 속에서 예·적금에 머무는 것은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선택”이라며 퇴직연금 자산을 실적 배당형 상품으로 적극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적금으로는 실질 수익이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1993년 하나은행 입사를 시작으로 미래에셋자산운용 주식 운용 본부장과 피델리티자산운용 한국 주식 투자 부문 대표, 다올자산운용(구 KTB자산운용) 대표이사 등을 역임한 ‘스타 펀드매니저’ 출신이다. 2023년 하나자산운용 수장 자리에 오른 이후에는 상장지수펀드(ETF)와 타깃데이트펀드(TDF)에서 대형 운용사들을 웃도는 성적을 내며 최근 연임을 확정했다.
김 대표는 국내 퇴직연금 자산의 90%가 여전히 수익률이 예·적금과 비슷한 초저위험·저위험형 상품에 묶여 있는 현실을 아쉬워했다. 그는 노후 자금의 본질이 ‘보전’이 아닌 ‘성장’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지금같이 물가가 오르고 부동산·주식 등 모든 자산 가격이 오르는 상황 속에서 예금에 돈을 묻어두면 실질 가치가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안정만으로는 노후를 지킬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미국에서는 60대 은퇴자조차 주식 비중이 평균 70%를 넘고 2~30대는 90% 가까이로 유지한다"며 “우리나라는 여전히 ‘퇴직금은 절대 잃으면 안 된다’는 인식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국내 투자자들에게 퇴직연금 투자로 TDF를 적극 활용할 것을 권고했다. TDF는 가입자의 은퇴 시점을 기준으로 자산 배분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구조의 투자 상품이다. 젊을 때는 주식 비중을 높게 두고 은퇴가 다가올수록 점차 채권 비중을 늘리는 ‘글라이드 패스(Glide Path)’ 원리에 따라 운용된다. 자신이 매번 투자 판단을 하지 않아도 은퇴 시점에 맞춰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유지해 장기 투자 수익률을 끌어 올린다. 그는 “퇴직금 운용 주체가 기업에서 근로자 개인으로 넘어가는 시대에 가장 적합한 퇴직연금 투자 상품”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TDF가 미국 퇴직연금 제도인 401K가 성공적으로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401K 제도는 이미 실적 배당 중심의 구조로 정착돼 있다”며 “총 운용 자산 1경 3300조 원 중 약 5000조 원이 TDF에 투자돼 있는 데 이는 국내 증시 전체 시가총액보다도 큰 규모”라고 했다.

하나자산운용 TDF는 전 빈티지(예상 은퇴 시점) 부문에서 수익률 1위를 기록했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하나자산운용의 대표 TDF인 ‘하나더넥스트TDF’는 운용 규모 5조 원 이상 동일 유형 상품 중 설정일인 지난해 9월 30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수익률 기준으로 2030·2035·2040·2045·2050·2055 등 6개 빈티지 모두에서 1위를 차지했다. 김 대표는 “초기 국내 운용사들이 TDF의 환 헤지 비중을 최소 80%에서 최대 110%까지로 좁게 걸어 놓은 탓에 최근 원화 약세 국면에서 수익률 상승에 제한이 있었다”며 “하나자산운용의 경우 환 헤지 비중을 탄력적으로 조정해 위험을 줄이고 복리 수익을 극대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일부 대형사들이 내놓은 TDF ETF에 대해선 강도 높게 비판했다. 30년 이상 보유해야 하는 TDF를 사고파는(short-term trading) 게 목적인 ETF와 결합하는 건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 대표는 “퇴직연금을 ETF로 포장해 단기 매매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건 철학적으로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