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지난 13일 이재명 대통령이 5대 그룹 총수들과 경제단체장들을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도시락 오찬을 곁들인 첫 공식 간담회는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대통령 당선 후 자서전을 읽었다"고 말하자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등 현장엔 긴장감보다 여유가 감돌았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온화함 속에 재계가 주목한 묵직한 질문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이날 강조한 "기업이 경제의 핵심"이라는 발언은 단지 수사적 표현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향후 제도 개편과 입법의 실질적 방향으로 이어질 것인가.
현재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에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확대 등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들이 담겼다. 제도의 본래 취지는 명확하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를 '사법 리스크 확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충실 의무 확대 해석은 이사의 경영상 판단을 사후적으로 법적 책임으로 전환할 여지를 만든다. 한 번의 판단 실수로 손해가 발생하면, 개인 이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적극적인 투자나 신사업 진출은 그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경영계가 일관되게 요구해온 '경영판단의 원칙' 명문화는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의 입법례를 참조한 현실적인 제안이기도 하다.
이 같은 요구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5대 경제단체는 대선 직전 공동 정책 제언집을 통해 이미 관련 제도 개선을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앞서 한국거래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상법 개정은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한 핵심 제도 개편"이라고 강조했다. 주가지수 5000 시대를 열겠다는 정책적 의지의 일환으로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결국 핵심은 '방향'이다. 기업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제도 개선은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기업인이 과도한 사법적 부담 없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한쪽으로만 기운 입법은 신산업 창출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국가적 목표에 되레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미래 산업을 이끌 주체는 결국 기업이다. 경제가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규제 혁신과 함께 제도에 대한 신뢰가 따라야 한다. 이번 간담회가 보여준 '신뢰 회복의 제스처'가 향후 입법과 제도 설계에 반영돼야 하는 이유다. "기업이 경제의 핵심"이라는 말에 걸맞은 신중하고 균형 잡힌 제도 설계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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