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빠르게 행동하라”

2025-03-06

공동체 위기가 닥칠 때마다 광장을 메운 여성들은 ‘새로운 집단’으로 조명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여성들은 언제나 저항의 광장을 지켜왔다. 광우병 촛불집회, 박근혜 탄핵 집회가 그랬다. 그러나 광장의 시간이 끝나면 여성들의 목소리는 외면당했다. 촛불 열기 속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도 광장의 요구를 수용하는 데 인색했다. 소수자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 촛불민심인데도 차별금지법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서 12·3 내란과 탄핵 정국에서 응원봉을 들고 선 여성들은 이번만큼은 쉽게 광장을 떠나지 않을 기세다.

8일 여성의날을 앞두고 지난 3일부터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3·8 여성 1만인 선언’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 제안으로 시작된 서명이 3일 만에 5000명을 넘겼다. 이들은 “응원봉의 여성 정치가 의사봉의 성평등 정치로 이어져야 한다”며 광장의 연대를 일상의 연대로 이어갈 것을 다짐한다. “윤석열의 정치는 반여성 정치가 핵심이고 윤석열의 반여성 정치가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는 인식이 선언의 계기이다.

윤석열의 반여성 정치는 여성가족부 장관이 1년 넘도록 부재인 현실이 웅변한다. 성평등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은 윤석열 정부에서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의 ‘전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은 146개국 중 94위를 점했다. 한국이 성별 임금격차가 큰 국가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지적도 매년 되풀이된다. 현실이 이런데도 신영숙 여가부 차관(장관대행)은 6일 “저출생 위기 극복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여성을 국가경쟁력 강화의 수단으로만 간주하는, 여성 배제 메시지에 가깝다.

세계여성의날 조직위원회는 여성의날 슬로건을 ‘더 빠르게 행동하라’로 정했다. 조직위는 “(전 세계가) 완전히 평등한 상태가 되려면 134년 걸린다는 게 WEF 전망”이라며 “성평등을 위해 더 신속하고 단호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 여성들은 광장과 일상에서 연대의 파도로 퇴행의 시대를 돌파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여성들과 연대의 파도를 함께 타고 ‘더 빠르게 행동’해줄 것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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