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일기] 포기와 수용 사이

2025-11-20

요즘 이상하게 몸에 작은 신호들이 느껴지는 횟수가 잦아진다.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이 작은 신호가 지금은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작정 젊다는 이유를 무식하게 들이밀면서 살았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조금씩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지금까지 늘 붙잡는 것에만 익숙한 사람이다. 아이에게도, 일에도, 대부분의 관계에서도 말이다. 조금 더, 조금 더, 그 조금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엔 나도 모르게 지쳐있었다는 사실을 조금 뒤늦게 깨달았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고, 어떻게 해도 가까워지지 않는 마음이 있고, 최선을 다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있다는 것. 그런 순간마다 예전처럼 힘으로 붙잡으려 들지 않고 그저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게 된다.

그때 누군가 뒤통수를 친다. ‘아, 이것은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구나.’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수용의 마음은 포기보다 훨씬 따뜻했다.

아이들을 키우며 배운 것도 비슷하다. 예전에는 넘어질까 봐 손을 꼭 잡아주는 것만이 사랑인 줄 알았다. 하지만 혼자 걷겠다고 잡았던 손을 놓으며 혼자 걸음을 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이 붙잡는 힘이 아닌 한 발짝 물러나 지켜봐 주는 용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드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고 남겨진 것들을 조금 더 깊이 바라보게 되는 과정이다. 붙잡아야 할 것과 놓아야 할 것이 예전보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럴 수도 있지’하고 중얼거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자라난다. 세상에 등을 돌리는 대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것이 포기라면, 그 포기는 참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결을 지니는 것 같다.

살아가며 한 걸음씩 비워낸 자리들에 이제는 작은 바람도 스며들고, 아이의 웃음도, 하루의 피로도 예전보다 조금 더 선명하게 들린다. 포기와 수용 사이에서 흔들리던 시간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더 부드럽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요즘 들어 유난히 고맙다.

류민수 펜을 든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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