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네 시계는 오전 5시 반을 가리킨다. 우리는 반나절만큼 떨어져 있다. 타국에서 너는 이제야 생일을 맞는다.
열일곱 시간 느리게 그곳의 하루는 시작된다. 너는 두 나라를 오가느라 두 개의 시계를 몸에 새겼다. 그러다 많은 것이 고장 났지만 생일을 두 번 축하받게 되었다.
집으로부터 충분히 멀어져 그것이 전생처럼 느껴질 즈음 생각한다. 집이라는 개념이 시간과 함께 움직여서 한곳에 머문 적 없었다는 것을. 어떤 집은 꿈쩍도 하지 않았기에 사라진다. 그럼 어디부터 바깥이라 부를까. 빗겨간 자리와 찾아오는 행운 사이로 새로운 자세를 찾고 있다. 사람으로부터, 말로부터, 좋아하는 식당으로부터 일부를 길어올린다.
그럴수록 너는 다른 사람 말에 귀 기울이게 된다. 경계에 선 노인과 이주민, 부모를 모르는 아이들을 만난다. 국경을 넘는 또 다른 이주자의 밤을 알게 된다. 어쩌면 그들도 비슷할까 봐. 듣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 우리 모두는 한때 다르게 생긴 미래를 기다린 적 있다. 내가 모르는 슬픔이 스민다. 그것이 머물 터를 찾기 시작한다. 그러다 작가가 된다. 연필이 된다. 마이크가 되고 타인과 타인의 말이 머무는 게이트가 된다.
언덕이 많은 동네에서 너는 경사를 오른다. 가파른 길목을 다니다가 지금 내게 가장 가파른 언덕은, 매일 교정받는 타국어라고 생각한다. 너는 잘해내고 있다. 긴장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렇다 해서 갈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타국어를 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필요하다. 어디서든 주술 관계와 어순을 따지지 않고 말할 수 있다면.
경계에 머무는 인간들이 너에게 말하고, 너는 그것을 너의 문장으로 한 번 더 옮긴다. 그렇게, 여러 사람이 너의 집에 머물다 간다. 네가 후천적으로 터득한 언어는 몰랐던 동네와 세계 사이 계단을 놓는다. 서로 몰랐던 자들의 기억이 거기 얼마간 함께 머문다. 언덕에는 우리가 흘린 집들이 자란다. 얼마나 다행이니. 이토록 다르게 생긴 집이 곳곳에 생겨난다는 건. 집에 다녀온 자들은 서로를 미워하기 어려워진다.
너의 시계는 이제 7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여긴 이미 다음날이 시작되었다. 우리 몸에서 복수의 시계가 째깍대는 이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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