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어른이 부재하는 대학

2025-01-21

어른은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큰어른’은 더욱더 그렇다. 관건은 나이가 아니라 ‘나잇값’이다. 먹은 나이만큼 그 값을 해야지 어른도 되고 또 큰어른도 된다.

나잇값을 한다고 함은 그 나이답게 행한다는 뜻이다. 열다섯 살이 되면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이 되면 어른으로 우뚝 서며, 마흔이 되면 미혹되지 않고 쉰에는 천명을 깨닫는다는 공자의 통찰이 나이다움의 대표적 예다. 나이 예순에 마음의 평정을 이루고, 일흔에 마음먹은 모든 것이 천도, 다시 말해 하늘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음도 마찬가지다. 나이다움에 대한 오래됐지만 여전히 울림이 큰 가르침이다.

여기서 주목할 바는 공자가 나이다움을 성장 차원에서만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자의 나이다움에는 성숙이 두텁게 깔려 있다. 열다섯 살이 되면 지적 성장을 위한 발걸음을 본격적으로 내딛는다. 그런데 서른에 어른다운 어른으로 우뚝 서려면 성장만으로는 안 된다. 그것은 성숙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렇게 나이를 쌓아가면서 지혜와 마음, 인격의 성숙을 빚어냄으로써 미혹되지 않고 천명을 알게 되며 마음의 평정과 천도와의 합일도 일궈낸다.

성숙을 바탕으로 나잇값을 하면 큰어른이 되기도 한다. 큰어른은 ‘사표’,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본받을 만한 인물을 가리킨다. 바로 지적, 심적, 인격적으로 성숙한 이들이다. <사기>를 쓴 사마천은 “나라의 현명한 재상과 좋은 장수는 백성의 사표”라고 통찰했다. 그래서 가정이나 지역사회, 국가 할 것 없이 이러한 사표가 많을수록 그만큼 평안하고 풍요로운 삶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사마천의 통찰과는 정반대다. 나라 차원에서 큰어른이 없은 지 오래됐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 총장이라면 우리 사회의 대표적 지성인이다. 취업학원으로서의 대학을 추구하지 않는 대학의 총장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렇게 지성인의 대표 격인 대학 총장 가운데 이번 계엄 사태에 대해 공적으로 견해를 표명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이번 사태가 여야의 문제도, 좌우의 문제도 아닌 민주헌정으로 대변되는 국기(國基) 차원의 문제임에도 말이다. 대학은 진리 추구의 장이란 표방이 한없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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