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의 무게

2025-01-16

김길웅, 칼럼니스트

시대를 공유하는 일이지만 내게도 가방의 유래는 유별하다. 가방이 흔치 않던 시대, 내 아잇적 책가방은 학생이라는 의미였다. 한데 초등학생 때, 내겐 책가방이 없었다. 보자기를 허리에 묶고 다녔다. 책보라 했지 책가방이라고 하지 않았다. 교과서도 얄팍하고 공책도 몇 장짜리였으니 가능했지, 지금 같았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묶은 보자기를 돌려 어깨에 메는 개구쟁이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너도나도 허리에 불룩하게 책보를 업고 있는 아이들 등하굣길은 진풍경이었을 테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교복에 책가방이 생겼다. 가슴 뛰고 신이 났다. 양쪽 2개의 방에 책을 겹겹이 세우고 손잡이 둘을 한데 맞대어 들고 나서면 어깨도 으쓱해 세상을 다 넣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때 가방은 질기지 못해 한 학년을 다하지 않았는데도 닳아 너덜거렸다. 닳고 해진 데를 바늘로 깁고 실로 감아 가며 들었다. 못 살던 시절이라 얼른 새 책가방이 생길 턱이 없었다.

교육대 전신인 사범학교로 진학하면서 새로 산 책가방은 책으로 찼다. 한 단계 올라선 학교의 무게를 실감하게 무거웠다. 한 마장 거리를 통학하며 수차례 왼손 오른손 바꾸며 들었다. 그렇게 3년, 어깨가 한쪽으로 기운 친구들도 있었다. 번갈아 들지 않은 탓이다. 책가방이 무거워야 공부를 잘하는 것처럼 생각하던 이상한 허세가 학생들 마음속에 헛바람으로 들어 있었던 아닌지 모른다.

나는 심했다. 사범학교 2학년 후 학기부터 문교부에서 시행하는 교원검정고시에 응시한다고 교과서 외로 책 몇 권을 더 넣고 다녔다. 국문학사, 우리말본, 국어음운론연구, 국문학개론 같은 사범대 과정의 전문서적들. 왜 그랬을까. 졸업하면 의무적으로 초등학교 교원이 되는 학제였으니 이를테면 반란이었다. 1년 뒤, 나는 운 좋게 시험에 합격했다. 지금의 고3 때의 일이다. 들고 다니던 나도 힘들었지만 책을 감당하던 책가방의 노고도 작은 것이 아니었다. 단지 제 몫만 해낸 것이 아니다. 나는 책가방에 미래를 껴안아 꿈을 담고 다녔던 셈이다.

교단 생활을 하면서도 줄곧 가방을 붙들었다가 퇴임하며 내 손이 가방을 놓아 버렸다. 그러다 조금 놀라운 일이 있었다. 작은아들이 가방을 구입해 택배로 부쳤지 않은가. 뜻밖이었다. 제 엄마하고 짬짬이(?)한 것을 나중에야 눈치 챘다. 단출한 것이라 썩 맘에 든다. 고맙다는 인사치레로 집에 온 아들 어깨를 한 번 다독여 줬다. 아들이 헤아렸을 법한데, 글방 강의 갈 때 안성맞춤이다.

얼마 전 작은아들 집에 갔다 마침 제 삼촌 집에 가 있던 손자 지용이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학원에 가야 할 시간이란다. 작별하면서 걔 책가방 짊어지는 걸 거들다 깜짝 놀랐다. 등으로 얹는 가방의 무게가 엄청나다.

이걸 초등학교 6학년생 책가방이라 하겠는가. 옛날에는 상상도 못하던 무게다. 요즘 아이들 툭하면 게임이나 한다, 밖에 나가 공이나 찬다 할 게 아니다. ‘모름지기 이런 무게를 짐 지고 사는구나.’

“안녕히 계세요.”

활짝 웃으며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 손자. 세대 차이인가. 아이 가방이 하늘이면 내 가방은 땅이다. 저 무게라면, 지금 저 무게를 짐질 수 있다면 몇 년 뒤 아이에게 얹어질 인생이란 큰 짐도 너끈히 져 나르리라.

뒷모습으로 슬쩍 아이의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우리 지용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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