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등학교 1학년 한국사 시간에 조는 학생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마침 수업 진도가 현대사 막바지에 이르러 계엄과 탄핵 얘기가 자연스럽게 언급되기 때문이다. 연일 방송과 유튜브 등을 통해 쏟아지는 관련 영상은 더없이 좋은 학습 부교재다. 가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역시 훌륭한 토론 대상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12월 3일 계엄이 성공했다면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① 포고령을 충실히 이행한다. ② 충분히 경고가 됐으니 물러난다.
계엄 다루는 현대사 수업 관심 쑥
‘경고용 계엄’ 주장, 내란죄 방어용
여당 ‘후안무치’ 피할 수 있을까
지난주 갤럽 여론조사에서 탄핵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75%였다. 계엄은 내란이라는 의견도 71%가 나왔다. 위의 질문이 포함됐다면 ①번을 선택한 사람은 훨씬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계엄의 최고 실행자는 정답이 ②번이라고 우긴다. 몇 가지 근거도 댄다. 계엄은 야당이 헌법기관인 감사원장까지 탄핵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또 계엄 후 잠시 감사원장과 법무부 장관 탄핵이 중단됐으니 계엄의 경고 효과를 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 영상과 이후 드러난 계엄 모의 정황을 보면 영 설득력이 떨어진다. 계엄을 선포한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현장의 군과 경찰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다그쳤다. 1500명의 군인을 살상무기와 함께 동원했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체포할 계획도 짰다. 이들을 가둘 장소도 점검했다. 체포된 이들을 다그쳐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진술을 받아낼 요량이었던 것 같다. 그래야 계엄의 정당성이 확보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계획이다. 필요하다면 고문과 처단도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앞서 본 문제는 향후 이어질 내란죄 수사와 탄핵심판이라는 심화 문제에 대비하기 위한 몸풀기 성격이다. 경고만 하고 물러났을 것이란 주장은 내란죄를 한사코 부인하고 탄핵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대통령의 40년 지기는 “전 세계에 송출되는 방송에 ‘나 내란한다’고 광고하는 내란이 어딨냐”는 풀이를 내놨다. 계엄 해제 후 ‘평화롭게’ 철수했다는 보충설명도 한다. 하지만 방송으로 생중계된 것도, 155분 만에 계엄이 해제되자 군과 경찰이 철수한 것도 시민과 언론이 용감하게 몸을 던졌기 때문이고, 국회가 신속히 대응한 결과다. 국회 장악에 실패하자 이후 계획들도 실행되지 않은 것일 뿐, 애초에 실행 의지 없이 계엄을 모의한 것은 아니다.
형법은 종류별 죄목을 정리한 ‘각칙’ 편 맨 첫머리에서 내란죄를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 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로 규정한다. 국헌 문란에 대해선 법에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헌법 또는 법률을 소멸시키거나 헌법에 따라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적으로 전복 또는 권한행사를 막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더구나 내란죄는 미수범도 처벌 대상이다. 총을 든 군인이 국회의사당 창문을 깨고 진입한 것은 도저히 소란이라고 볼 수 없는 중대한 헌법과 법률 위반이다. 탄핵도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지난 9일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도량발호(跳梁跋扈)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의미다. 1000여 명의 교수 중 41.4%가 선택했다. 그런데 투표를 한 주만 뒤에 했으면 2위에 오른 후안무치(厚顔無恥)와 순위가 바뀌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엄 실패 후 모습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이제 조금 어려운 문제로 마무리해 볼까 한다. 계엄은 내란이 아니며 탄핵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국회의원에 대해 3년 뒤 유권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① 의리 있다고 뽑아준다. ②후안무치라며 외면한다. 상식적인 시민이라면 ②번을 택할 것 같은데,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출제된 기출 문제라며 ①번이 정답이라고 주장한다. 난이도가 높은 킬러문항 같지만 국민은 정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