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형(極刑)과 처단(處斷).
극형은 사형, 즉 죽임을 의미하기에 살벌한 단어다. 신속하고 엄한 벌을 내린다는 처단은 극형에 비해 순한 맛이지만 군부가 이러한 단어를 사용할 땐 죽음 못지않게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난 3일 밤 전 국민은 실로 44년 만에 군부 인사의 입에서 나온 '처단' 단어를 접했다.
그날 밤 윤석열 대통령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이후 44년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역사책에서나 배웠던 '계엄'이 눈앞에 벌어져 깜짝 놀란 가운데 대통령에 이어 별 넷, 육군 대장인 박안수 계엄사령관(당시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를 발표했다.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 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024년 12월 3일 23시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다음 사항을 포고합니다"고 시작하는 포고령은 모두 6개 항목이었다.
계엄사령관은 포고문 5항을 통해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에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며 '처단'을 강조했다.
또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계엄사령관 특별 조치권)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고 계엄에 저항하면 '처단'하겠다고 위협했다.
윤석열 정권의 계엄 포고문은 44년 전 전두환 군부, 45년 전 박정희 대통령 사망 뒤 선포했던 계엄포고문과 판박이였다.
1980년 5월 17일 군부는 "본 포고를 위반한 자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수색하며 엄중처단한다"고 경고했다.
1979년 10월 27일엔 계엄사령관이 된 정승화 육군 대장(육군참모총장)이 "상기 포고를 위반한 자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수색하며 엄중 처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때와 윤석열 정권이 다른 점은 특정 직업군(의사)을 콕 찍어 '처단하겠다'고 한 것.
윤석열 정권은 의정 갈등을 단숨에 제압하겠다며 계엄에 나선다는 것으로 의정 갈등을 북한과의 전쟁 이상으로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 셈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비상계엄이 선포된 건 모두 7차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군부는 군사쿠데타 이후 비상계엄령과 함께 "(계엄포고) 위반자 및 위법행위자는 법원의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하고 극형에 처한다"며 밑도 끝도 없이 극형을 입에 올렸다.
1964년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선포한 비상계엄, 박정희 영구집권을 위한 '10월 유신' 선포에 따른 비상계엄 선포 땐 극형, 처단, 엄벌 등 처벌 수위에 대한 표현은 없었다.
극형, 처단 등 처벌 수위를 계엄 포고령에 다룬 건 사실상 군부정권에 이어 윤석열 정권뿐인 셈이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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