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지상파 방송사 재허가 조건 중 ‘비정규직 처우 개선방안 및 이행실적 제출’ 조항을 삭제한 사실이 다시 비판받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MBC 기상캐스터 고 오요안나씨 사건이 주목받으면서다. 시민단체들은 “관리 감독해야 할 방통위가 면죄부를 준 셈”이라고 했다.
5일 취재를 종합하면,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과 이상인 전 부위원장 ‘2인 체제’ 방통위는 지난해 1월 지상파방송사업자 재허가 조건으로 2020년 신설했던 ‘비정규직 처우 개선방안을 마련해 재허가 이후 6개월 이내에 방통위에 제출하고 그 이행실적을 매년 4월 말까지 방통위에 제출할 것’ 조건은 삭제하고 대신 ‘방송사별 비정규직(계약직, 파견직, 프리랜서 등) 인력 현황 및 근로실태 파악을 위한 자료를 매년 4월 말까지 방통위에 제출할 것’을 새로 부과했다.
이는 비정규직 실태만 제출하면 처우개선에 대한 노력은 제출하지 않도록 조치한 셈이다. 2020년 방통위는 프리랜서 등 방송사 비정규직 인력 처우 개선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고 보고 해당 조건을 신설했다.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가 부당해고를 당한 뒤 회사와 싸우는 등 방송사의 ‘무늬만 프리랜서’ 고용 관행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상황이었다. 당시 방통위는 MBC에 대해 “비정규직에 대한 회사 차원의 관리가 미흡한 상황”이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실현 가능성 있는 내부 규정 마련 및 관련 교육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KBS와 EBS가 경영난을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거 감축한 것과 함께 방통위의 비정규직 관련 재허가 조건 삭제 문제가 지적됐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방송사들은 재허가 평가를 받을 때 처우개선에 대해 전혀 실적을 제출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윤석열 정부 방통위에서 최소한의 염치가 있다면 (해당 조건을) 원상복구 논의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방송 제작, 편성이 아닌 경영에 관한 부분은 가급적 최소화하거나 축소하는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라고 했다. 방송 비정규직 노동단체 엔딩크레딧은 지난 4일 성명에서 “수많은 ‘무늬만 프리랜서’들이 최근 몇 년간 노동자가 맞다는 법적 판단을 받았음에도 지상파 방송사들이 꼼수 대응을 한 것엔 관리 감독 당국의 책임이 매우 크다”며 “관리 감독해야 할 방통위가 면죄부를 주고 있는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방통위는 지금이라도 다시 재허가 심사조건에 비정규직 처우 개선 방안을 넣고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