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나저제나, 이 나라가 다시 정상 상태로 돌아갈 날을 기다린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답답한 마음이 들 때마다 스스로 다독인다. 더디더라도 반드시 옳은 길로 갈 테니 조급해하지 말자고. 이렇게 믿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옳은 길인지 우리 대다수가 분명히 알고 있다고 실감할 수 있어서다. 현실은 언젠가부터 옳고 그름을 따지기 어렵도록 복잡하게 꼬여 있는데, 왜 이번만큼은 이토록 답이 분명할까? 헌법이라는 기준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 선포와 이후 국회의 해제 의결을 막으려던 일련의 조치들이 헌법 77조 위반이라는 것만큼은 여야와 좌우를 막론하고 거의 이견이 없다. 이 사실 하나만 붙잡고 가더라도 혼란은 종내 정리되리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헌법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민주공화국에서 헌법만큼은 절대적으로 수호해야 하는 것이라면, 왜 우리는 그동안 헌법을 거의 잊고 살았을까? 헌법을 지키지 않는 현장을 목도해도 왜 그냥 지나쳤을까?
헌법 33조 1항을 보자.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노동 3권이 정확하게 적혀 있다. 그렇다면 생전에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동조합은 안 된다”고 했던 재벌 회장은 반헌법적 인사가 아닌가? 그의 생전에 이 조항이 달랐던 것도 아닌데 왜 그리 당당하게도 이런 말을 했으며, 그 말을 따른다며 3대째 노조의 설립과 운영을 노골적으로 막는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비단 그 기업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노조를 불온하게 여겨왔고 합법적 노조 활동에도 천문학적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되곤 했는데, 이런 현실을 국가는 왜 방치했을까?
이번에는 헌법 32조 3항을 보자.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지난해 12월30일, HD현대미포 조선소에서 잠수 작업을 하던 김기범씨가 사망했다. 이는 지난해 5월 HD현대삼호 작업장에서 일어난 이승곤씨 사망 사건과 놀라울 만큼 똑같다. 22살 청년, 하청업체 직원, 2인 1조 작업 규정이 무시된 채로 잠수 작업을 하다 숨졌다는 정황까지 판박이다. 그냥 우연일 리가 없다. 아직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뿐 언제든 그럴 수 있는 노동자들이 수없이 많다는 방증이다. 인간의 존엄성 중 가장 기본은 ‘생존’이 아닌가? 이조차 보장 못하는 근로조건을 방치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명백한 위헌이다.
하나만 더 짚어보자. 헌법 35조 1항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고 했고, 3항은 국가가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했다. ‘모텔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물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있다는데,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현실에도 있다. 반지하, 고시원, 비닐하우스에서도 사람들이 산다. 그저 각자 사정들일 뿐이라면 헌법 35조는 뭐 하러 존재하는가?
윤석열을 탄핵, 처벌하는 것만으로 정상적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헌법에 비추어 비정상적인 상태는 어떻게든 고쳐간다는 지향 정도는 있어야 정상적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런 지향은 없이 이번 사태만 해결하면 헌법 수호의 영웅이 되는 줄로 착각하는 정치인들이 있을까봐, 그게 걱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