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기운이 가득하다.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꽃망울이 영글고 무리 지은 새들은 어디로 가고 어디서 오는지 모르게 바쁘게 비행한다. 계절의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 하나 발견한다. 겨울 다음에는 반드시 봄이 온다는 거다. 늦게 온 적은 있어도 오지 않은 봄은 없다. 떠나는 겨울이 아무리 꽃을 시샘하여도 봄은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어 우리 곁으로 온다. 그러기에 우리가 인생에 눈보라가 몰아쳐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반드시 겨울은 끝나고 봄은 온다는 희망을 간직하기 때문이다. 희망을 간직한 이는 꽁꽁 언 땅에 봄씨앗을 심고 생명을 키운다.
나도 봄맞이를 했다. 두꺼운 겨울 이불을 걷어내고 봄 이불을 꺼내어 깔았다. 이불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마음이 가벼워진다. 또 겨울 동안 쌓였던 먼지 좀 털어보자고 성당의 창문을 여니 신선한 공기가 성당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 ‘현대화’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인 이 말은 교회 쇄신을 말하는 동시에 전혀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고정불변이 깨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요한 23세 교황은 시대의 문제 해결 방법으로 이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각자의 닫혀있는 창문을 열어 바깥의 공기를 받아들이자고 했다. 공기의 순환처럼 나를 개방하여 외부를 받아들일 때, 시대가 가진 고민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조르나멘토’라는 것이다.
그 희망 가득한 봄의 시작과 함께 교회는 40일간의 사순시기를 시작한다. 사순시기는 사람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때이다. 성경에는 유명한 ‘되찾은 아들의 비유’가 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자신이 받을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여 집을 나갔다. 집을 나간 작은아들은 방종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하고 굶어 죽기 직전까지 간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작은아들은 아버지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돌아오는 작은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달려가 껴안고 작은아들을 위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한다.
그때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큰아들은 착한 아들이었다. 집안에서 종처럼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그런 큰아들에게 아버지는 작은 선물하나 챙겨 준 적이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 먹은 동생이 돌아오니 아버지는 잔치를 베풀어주시다니. 사실 아버지와 멀어진 건 작은아들만이 아니었다. 큰아들도 아버지를 떠나있었다. 옹색해 보이는 아버지를 향한 미움과 증오에 사로잡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었다. 집을 떠나지 못했을 뿐이지 큰아들도 동생만큼 아버지를 떠나 방황하고 있었다. 큰아들도 내적으로 굶어 죽기 직전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큰아들에게 말한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그렇게 아버지는 되찾은 ‘두 아들’을 품에 안으시고 즐거워하신다.
사순시기는 재의 수요일로 시작한다. 수요일에 나뭇가지를 태운 재를 십자가 모양으로 이마에 바른다고 재의 수요일이다. 얼마 전 미국 국무장관이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고 방송에 나와 화제가 됐던 그 십자가 말이다. 십자가를 이마에 바를 때 사람이 사제에게 듣는 말은 이렇다. “사람아, 너희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하느님이 사람에게 하신 말씀,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에서 따왔다.
언젠가 우리의 몸은 가루가 되고 흙이 된다. 백년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는 어떤 것도 손에 쥐지 못하고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고 살고 있다. 내가 가지지 못하면 남도 가지지 못한다고 이웃을 망가트려 버린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심정으로 복수를 결심한다. 거짓말을 하고 총칼을 들어서라도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전쟁과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겨울 동안 이어진 혼란과 갈등은 일단락될 것이다. 그럼 우리 모두 결과에 승복하자. ‘저놈 잡아라’가 아닌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요’라며 자신의 가슴을 치자. 그리고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갈 우리에게는 일상이 있다. 손에 들렸던 태극기와 응원봉은 광장에 내려놓고 갈라진 들판에 뿌릴 봄씨앗을 움켜쥐자. 스마트폰 대신 시집 한 권 들고 바다로 가자. 집 곳곳에 쌓여있는 먼지를 털어내자. 창문을 열고 봄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자. 그리고 이렇게 외치자. ‘아조르나멘토!’
조승현 가톨릭평화방송 신문(cpbc) 보도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