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수들이 자기 몸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지금 세계 프로축구에서는 체중과 체지방률을 둘러싼 구시대적 문화가 여전히 선수들을 옥죄고 있다고 글로벌 스포츠 전문 매체 디애슬레틱이 15일 전했다.
페네르바체 알랑 생막시맹은 최근 조제 무리뉴 감독으로부터 “과체중”이라는 지적을 받은 뒤, 자신의 체성분 데이터를 공개하며 정면 반박했다. 그는 “거짓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진실은 계단을 오른다”며 무리뉴를 저격했다. 이에 대해 무리뉴는 “제대로 훈련한 선수는 계단을 올라갈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선수는 엘리베이터가 필요하다”고 응수했다.
이처럼 ‘몸무게’는 감독과 선수 사이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이전에도 맨체스터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2022년 월드컵 직후 칼빈 필립스를 “과체중으로 돌아왔다”고 공개 비판해 논란을 빚었다. 필립스는 훗날 그 시기를 “선수 생활 중 가장 힘든 시간”이라 밝혔다. 스포츠영양학자 니산 코스텔로 박사는 “선수도 인간”이라며 “공개적인 체중 비판은 자존감에 큰 타격을 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축구는 체지방률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시대착오적 문화에 갇혀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은 선수들의 체지방률을 일주일 단위로 측정하거나, 식당에서 식단을 기록하게 하는 방식으로 선수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고 있다. 일부 구단에서는 “선수가 운동선수처럼 보이길 원한다”는 이유로 영양 전문가를 고용해 체성분 측정만 맡기는 경우도 있다. 코스텔로는 “이런 문화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며 “체중이라는 숫자가 선수의 경기력보다 우선시되는 구조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리버풀 구단 출신 영양학자 제임스 몰턴 교수도 “축구는 본질적으로 기술 스포츠”라며 “체중이나 체지방률이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작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수치들이 선발 기준이 되면, 선수는 신체적·정신적으로 왜곡된 방식으로 자기 몸을 다루게 된다”고 지적했다.
일부 선수들은 하루에 여러 번 체중을 재거나 식사 후에도 몸무게를 확인하는 등 집착에 가까운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외모 평가도 이 같은 강박을 부추긴다.
여자 선수들 사이에서는 이미 경고등이 켜졌다.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여성 선수 5명 중 1명이 섭식 장애를 겪었다. 아스널 알레시아 루소는 코로나19 기간 중 “날씬해지고 싶어 식사를 줄였다”며 극심한 자기 통제를 고백하기도 했다. 반면, 남성 선수들의 경우엔 이 문제가 여전히 ‘침묵’ 속에 가려져 있다. 코스텔로는 “십대 시절 과체중 낙인을 찍힌 남자 선수들도 여전히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며 “일부는 여전히 ‘체중이 얼마가 넘으면 출전할 수 없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선수들은 오히려 경기 전날에도 에너지 섭취가 부족한 채 훈련에 나서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프리미어리그 소속 한 구단 선수의 81%가 경기 전날 권장 탄수화물 섭취량을 채우지 못했다. 코스텔로는 “탄수화물이 살을 찌운다는 오해가 퍼진 결과”라며 “어떤 선수들은 경기 직전 어지러움을 호소하거나 저혈당 증세까지 보인다. 경기력을 위해 필요한 연료를 외모 기준 때문에 포기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리버풀 존무어스대 몰턴 교수는 이러한 체중 집착을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도식적 실천(doxic practice)’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는 “프로축구에는 이상적인 신체 조건에 대한 강박이 구조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이를 벗어나지 못하면 게으르거나 비전문적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변화는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체성분 측정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목적이 되는 순간”이라고 입을 모은다. 측정이 아니라, 소통과 교육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선수를 수치로 평가하기 전에, 먼저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선수의 몸에 대한 결정을, 선수와 함께 내려야 한다” 등을 강조하고 있다. 디애슬레틱은 “그것이 축구가 숫자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스포츠가 되는 첫걸음”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