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울고 웃었던 ‘장이’들의 이야기

2025-01-06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조선은 철저한 ‘사농공상’의 나라였다.

벼슬하는 선비가 으뜸이었고 물건을 만드는 ‘장이’들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아무리 손재주가 좋아도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웠던 사회 분위기는 조선의 발전이 늦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전문성으로 꽃을 피운 이들이 있었다. 이수광이 쓴 이 책, 《조선의 프로페셔널》에서 소개하는 조선의 명인들은 자신이 ‘꽂힌’ 한 가지 분야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어찌 보면 사회적 인정과는 별개로 자신이 원하는 일에 푹 빠지는 것이 진정한 명인의 기질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한 가지 일에 조건 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자신의 열정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던 장인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에서 황기와를 처음으로 구웠던 역관 방의남의 이야기다. 광해군은 즉위하자 대궐의 중건에 나섰고, 이에 기와를 굽는 와장들이 많이 동원되었다. 특이한 점은 광해군은 대궐의 기와를 청기와나 황기와로 올리려 했다는 것이다.

(p.177-178)

“대궐을 중건할 때 청기와나 황기와를 사용하도록 하라.”

광해군은 대궐을 중건하면서 새로운 명을 내렸다. 대신들은 광해군의 명을 받고 깜짝 놀랐다. 청기와는 드물게 사용하고 있었으나 황기와는 중국에서도 천자의 대궐에만 사용했기 때문에 조선에는 황기와를 굽는 와장이 없었다. 대신들은 일제히 청기와나 황기와를 굽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으나 광해군의 영은 지엄했다.

기와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던 역관 방의남은 와장들을 찾아다니며 청기와와 황기와를 굽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오랜 연구 끝에 고려시대에 청기와를 구웠던 기술을 찾아내 본격적으로 청기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황기와는 청기와보다 더 어려웠다. 창경궁의 몇 개 전각 지붕은 청기와로 덮었으나 광해군은 인정전은 황기와로 덮기를 원했다. 이에 방의남은 중국에 가는 사신단 일행을 따라가 황기와 굽는 기술을 전수하려 했다. 황기와를 굽는 제와소는 연경이 아닌 중국의 내륙인 남경에 있었다. 중국의 와공들은 순순히 기술을 가르쳐줄 마음이 없었다. 방의남은 중국 와공으로 위장을 한 뒤에 채색의 비밀을 알아내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중국의 황기와 채색 기술은 흙이 다른 조선에서 적용하기에 어려웠다. 우리 흙으로 기와를 만드는 것이니 우리 물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제와공들과 점토에 잘 섞이고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물감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단청 물감을 만드는 단청장과도 만나서 의논하고, 금박장인과도 상의한 끝에 마침내 기와를 굽는 점토에 잘 섞이는 황금색 염료를 만들어냈다. 침식을 잊고 연구에 몰두한 성과였지만, 결국 방의남이 제작한 황기와는 대궐에 쓰이지 못했다.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축출되자 조정은 천자의 대궐에서만 사용하는 황기와를 조선 대궐에 사용할 수 없다고 폐기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황기와는 역사에서 사라졌고, 광해조 이후 황기와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볼 수 없다.

책에 실린 내용 대부분은 조선의 장인 이야기지만, 신라나 고구려의 장인 이야기도 있다. 신라에서 활을 만드는 궁장으로, 활 만드는 장인을 보내라는 당나라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파견되긴 했지만 끝내 쇠뇌를 만드는 기술을 당나라에게 전수하지 않은 구진천의 충정도 잔잔한 울림을 준다.

(p.252)

“네가 감히 만승의 천자를 속이느냐? 당장 1천 보를 나가는 활을 만들지 않는다면 너희 가족까지 모두 도륙할 것이다.”

“천자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외신도 솔직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희는 동방에 있는 작은 나라지만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을 하라고 배웠습니다. 외신이 쇠뇌를 만들어 천자께 바치면 천자는 분명코 이 쇠뇌를 앞세워 신라를 침공할 것인데 신라의 신하된 자로 어찌 쇠뇌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천자를 속인 죄는 벌을 받아 마땅하니 속히 벌을 내리소서.”

그 뒤로 구진천이 어찌 되었는지는 《삼국사기》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숱한 위협을 받고도 끝내 나라에 해가 될 기술을 전수하지 않은 장인의 기개가 놀랍다. 이와 같은 장인의 헌신이 있었기에 기술은 조금씩 진일보하고 부국강병도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법한 장인들의 이야기가 다채롭게 수록되어 있다. 사회가 인정하지 않아도 올곧게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 그들의 열정과 헌신을 느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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