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라는 말
“세상을 살다 보면 경계를 많이 만나게 됩니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놀이를 하면서 도전과 실험을 하게 되는데 내가 평소에 안 해본 것, 낯선 세계에서 스스로 동기를 만들어 경계를 만나고 넘어서는 도전을 하게 됩니다. 도전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바로 용기입니다. 용기는 자라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독립하는 데 아주 중요한 덕목입니다.”
지난 5월 30일(금) 놀이운동가인 편해문 선생님이 장승초 부모와 교사 다모임 자리에 왔다. 놀이가 귀하고, 놀아야 자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용기’라는 말을 꺼냈다. 마침 ‘용기’라는 말이 가슴이 맴돌고 있어서 더욱 가슴이 와닿았다.
아이들이 즐겨 읽는 동화에도 용기에 관한 이야기가 제법 나온다. 동화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보면 용감한 사자왕 형 요나탄과 용기가 부족한 동생 스코르판이 나오는데 낭기열라(저승)에 가서 한층 용기가 생긴 스코르판을 모습과 여전히 용기가 넘치는 형 요나탄의 이야기를 읽으며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 어린이와 청소년이 자라는 과정에서 ‘용기’는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다. 용기가 없는 어린이가 용기가 생기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고, 한층 성장하기도 하니까.
아이들에게 여유를
‘용기’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어려움에 맞서는 마음이나 태도를 말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누군가를 구하거나 행동에 나서는 것도 용기이고, 옳다고 믿는 일을 하기 위해 비난이나 어려움을 감당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또 스스로 약점이나 고칠 점을 인식하고 틀을 깰 수 있는 도전을 시작하는 마음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많은 사람 사이에서 어려운 일이 일어났을 때 용기를 내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또 친구가 괴롭힘을 당할 때 나서서 도와주어야 할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할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더불어 불의에 맞서 옳은 일을 하며 꺾이지 않는 마음을 내야 하는 순간도 있다. 그만큼 용기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고, 용기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 동경이 되기도 한다.
편해문 선생은 용기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의 간섭을 덜 받고, 많은 놀이를 하거나, 어른들이 한발 물러서서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봐줄 때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늦은 시간까지 학교는 물론 학원에 가야 하고, 늘 어른의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는 물론 어른의 간섭으로 ‘용기’를 낼 기회조차 없을 때가 있다.
용기를 만나다
3월, 안천초에 왔을 때 3학년 석원이는 수업 시간은 물론 밥 먹을 때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집에 놀러왔을 때에도 쓰고 있길래 “편하게 마스크 벗으면 안 될까?”하니 어렵사리 마스크를 벗었다. 귀엽고 또렷한 이목구비가 마스크를 벗었으면 하는 마음을 더욱 크게 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밥 먹을 때만이라도 벗으면 안 될까?”하고 제안했는데 고맙게도 밥 먹을 때만 마스크를 벗게 되었다. 밥 먹을 때라도 마스크를 벗어준 석원이가 참 고마웠다. 다른 선생님들도 석원이가 처음으로 마스크를 벗었다면서 다들 좋아하셨다.
5월 중순이 지나갈 무렵 공개수업이 있던 날, 반갑게도 석원이 아버지가 학교에 오셨다. 너무 반가워서 아버님 손을 꼭 잡으며 “석원이가 마스크만 벗으면 참 좋을 텐데요.”하니 “긍게요, 그렇게 벗으라고 해도 안 벗네요.”
날도 더워지고 이젠 정말 벗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우리 석원이 마스크 벗으면 킹콩샘 집에 한 번 더 초대하도록 하지.”하고 아이들 앞에서 약속을 했다. 그런데 어느새 보니 날마다 걸려있던 검은색 마스크 줄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 벗었나 싶었는데 어느새 쓰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드디어 완전히 석원이가 마스크 줄도 걸지 않고 학교에 왔다. 그 모습이 너무 반가워서 그냥 아무 까닭도 없이 안아주었다. 몇 해 동안 쓰던 마스크를 벗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여러 갈등이 있었을 터이고, 익숙한 습관을 벗어던지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어른이든 아이든 오래된 습관이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마스크를 벗은 석원이가 자랑스럽고 멋지게 보였다.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아주 어렵고 힘든 현실이지만 어른들이 한 발짝 물러서서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바라봐주다 보면 어느새 용기 가득한 우리 아이가 되지 않을까?
윤일호 안천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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