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산 12승 관록의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이 18번홀(파5) 세번째 샷을 남겼을 때만 해도 이변은 없어 보였다. 중간합계 8언더파로 1타차 선두이던 그가 그린 뒤편에서 웨지샷을 붙여 버디를 더한다면 2018년 US여자오픈 이후 메이저 3승이 그의 몫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LPGA 메이저대회 역사에 남을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 가볍게 그린에 올리려던 칩샷이 빗맞는 바람에 공이 바로 앞 러프에 다시 잠기는 소위 ‘철퍼덕’ 실수가 나왔고, 4번째 샷은 너무 크게 치는 바람에 결국 보기를 기록했다.
최종합계 7언더파 281타로 끝내고 클럽하우스에서 아쉽게 지켜보던 김효주는 상대 실수로 공동선두가 되자 곧바로 연습레인지로 가서 몸을 풀었다. 쭈타누깐과 같은 조의 세계 6위 인뤄닝(중국)이 마지막홀에서 버디를 추가하며 공동선두로 마쳐 최소 3명의 연장전 가능성이 생겼다.
그리고 마지막조에서 따라온 린디 던컨(미국)과 사이고 마오(일본)도 18번홀에서 버디를 더하고 5명 공동 1위를 이뤘다. 던컨은 단숨에 경기를 끝내려는 기세로 과감히 친 이글 퍼트가 살짝 빗나간 뒤 3m 버디를 잡고 회생했고, 사이고 역시 비슷한 거리의 버디 퍼트를 넣었다.
28일 미국 텍사스주 우들랜즈의 더 클럽 앳 칼턴 잭 니클라우스 코스(파72)에서 열린 LPGA투어 셰브론 챔피언십(총상금 800만 달러) 최종라운드는 마지막홀 이변으로 메이저대회 사상 최초로 5명이 연장을 치르는 역사를 썼다. 일반대회에서는 박세리가 우승한 1999년 제이미 파 크로거 클래식 등 6명 연장전이 두 차례 있었지만 메이저대회에서는 3명이 최다였다.

쭈타누깐의 믿기지 않는 실수로 빚어진 5명 연장전의 열매는 지난해 신인왕 사이고 마오가 따먹었다. 18번홀에서 이어진 연장에서 사이고는 투온 시도후 그린 뒤편에서 친 세번째 샷을 홀 1m 옆에 붙여 버디를 예약했다. 그에 앞서 투 온에 성공한 뒤 약 3.5m 퍼트를 남긴 인뤄닝이 이글을 놓친다면 2차 연장으로 갈 수 있는 위치였다. 김효주도 인뤄닝보다 짧은 버디 퍼트를 남겼고 쭈타누깐도 2m 남짓한 버디 기회를 남겼다.
인뤄닝이 우승하거나 적어도 3명은 2차 연장으로 갈 분위기였지만 또 한 번 거짓말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3번째 샷을 물에 빠뜨릴 뻔한 던컨이 보기로 먼저 탈락한 뒤 인뤄닝의 이글 퍼트가 내리막을 타고 홀을 멀리 지나갔고, 김효주의 버디 퍼트도 홀 뒤편에 멈췄다. 이어 인뤄닝의 2m 버디 퍼트가 홀을 스치고 나왔고, 쭈타누깐의 버디 퍼트마저 빗나갔다. 상대들이 추풍낙엽처럼 무너진 이후 단독 기회를 맞은 사이고는 침착하게 버디 퍼트를 밀어넣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선두와 4타차 공동 11위로 출발한 김효주는 전반에 일찌감치 2타를 줄인 뒤 후반에 13번홀(파5), 15번홀(파4), 18번홀에서 좋은 버디 기회를 살리지 못한게 못내 아쉬웠다. 지난달 포드 챔피언십에서 통산 7승을 안은 이후 한 달만에 시즌 2승이자 2014년 에비앙 챔피언십 이후 메이저 2승을 눈앞에서 놓쳤다.
공동선두로 출발한 사이고 마오는 이날 2타를 잃었으나 마지막홀 버디로 연장에 합류한 뒤 연장에서도 인뤄닝의 3퍼트 등 상대 실수를 틈타 데뷔 첫승을 메이저 타이틀로 장식하며 상금 120만 달러(약 17억원)를 거머쥐었다. 전통에 따라 18번홀 옆 연못에 뛰어든 ‘호수의 여인’은 “LPGA 메이저 우승의 꿈을 이뤘다”며 기뻐했다.
이날 13번홀(파5)에서도 그린 뒤편 러프에서 웨지 대신 퍼터를 들고 자신없는 플레이로 보기를 기록한 쭈타누깐은 “샷은 전반적으로 만족하고 자신감을 얻었다”며 “쇼트게임은 보완하겠다”고 아쉬움을 달랬다.
고진영이 합계 5언더파 283타를 기록, 공동 6위로 시즌 4번째 톱10에 들었고 전날 공동선두이던 유해란은 이날 4타를 잃었으나 마지막홀 짜릿한 칩인 이글 덕에 공동 6위로 시즌 첫 톱10을 지켰다. 최혜진도 공동 9위(4언더파 284타)에 올라 한국선수 4명이 톱10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