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한국판 우븐시티’ 20년째 왜 못 만드나

2025-10-22

일본 시즈오카현의 소도시 스소노시는 최근 산업·주거 인프라를 갖춘 자족형 스마트시티로 변모했다. 도요타자동차가 총 70만 ㎡ 규모로 첨단기술의 미니 신도시 ‘우븐시티(Woven City)’를 지어 지난달 26일부터 입주를 시작한 것이다. 도요타는 폐공장 터였던 이 지역을 신기술 실험 도시로 재건했다. 자율주행 자동차, 로봇, 인공지능(AI), 수소에너지, 스마트홈, 핀테크 등을 규제 없이 실증할 수 있다. 도요타가 착공한 시점은 2021년인데 불과 4년여 만인 올해 1단계 공사를 완료했다.

우븐시티처럼 민간기업 주도로 개발된 자족형 도시는 ‘기업도시’로 불린다. 정부가 아닌 기업이 직접 사업 시행자로 나서 자신의 사업 목적에 맞게 도시를 설계하고 자본을 조달해 토지를 매입·건설한다. 기존 도시에서는 각종 행정 규제 등으로 구현하기 어려웠던 신기술을 실험할 수 있어 기업도시 건설에 나서는 사례가 미국·일본 등에서 속속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월마트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사업가 마크 로어가 2030년 착공을 목표로 500만 명 규모의 초거대 사막 도시 텔로사(Telosa)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일론 머스크도 자신이 보유한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본사를 중심으로 텍사스 남부 보카치카 마을 일대를 일명 ‘스타베이스시(City of Starbase)’로 조성 중이다.

우리나라도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4년 기업도시개발특별법을 제정했다. 기업도시개발법은 민간기업에 토지 수용권을 줘 산업 기능과 주거 기능을 갖춘 자족 도시를 조성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이어서 2005년 기업도시 시범 건설 사업 참여자를 공모했다. 그러나 민간기업 참여가 저조했다. 사업을 신청한 지방자치단체가 8곳에 그쳤다. 대기업이 함께 참여한 곳은 현대건설이 공동 사업자로 뛰어든 태안 기업도시뿐이었다. 정부는 이 중 6곳을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했는데 2곳(무주 기업도시, 무안 기업도시)이 중도 포기했다.

남은 4곳의 기업도시(영암·해남, 원주, 태안, 충주) 사업도 순탄치 않았다. 태안 기업도시는 2010년 완공 예정이었으나 20년이 넘게 현재 진행형이다. 환경부가 제동을 걸었고 설상가상으로 리먼브러더스 사태, 현대그룹 경영난 등 악재가 덮쳤다. 이후 정부 관심마저 시들해진 가운데 사업은 올해 겨우 건설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영암·해남 지역 도시 사업도 공유수면 양도 문제로 차질이 빚어지더니 사유지 보상 문제 등 험로를 걸었다. 그나마 충주 기업도시와 원주 기업도시가 2012년과 2019년 준공됐다. 다만 충주와 원주 역시 각각 첨단 산업·의료 업종과 연구개발(R&D) 시설을 유치하겠다는 구상과 달리 자동차 부품, 기계·금속, 화학, 식품 분야 기업까지 끌어들여야 했다.

일본에서는 3년 만에 짓는 우븐시티 같은 기업도시를 우리나라는 20년이 넘도록 왜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정부가 개발 이익 환수 부담금을 과도하게 부과하고 개발 이익 일부를 분양가 인하, 간선 시설 등에 재투자하도록 의무화해 사업 수익성을 저하시켰기 때문이다. 첨단산업 시설이 입주하기 힘든 낙후 지역들을 시범사업지로 지정한 것도 사업 활성화를 가로막았다. 윤석열 정부 시절에는 당국이 ‘기업도시 2.0’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기업도시 개발 면적 요건 등을 완화하며 사업에 재시동을 걸었다. 2023년 ‘기업혁신파크’로 재포장해 다시 기업도시 선도 사업 공모를 실시했다. 이 프로젝트에서도 네이버 외에는 대기업 참여 사례를 찾기 어려웠다.

이재명 정부는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한층 발전된 ‘기업도시 3.0’ 시대를 열어야 한다. 기존처럼 단순히 개발 규제를 풀고 세제 지원을 하는 수준에서는 실효성을 내기 어렵다. 도시 완공 후 자율주행·AI·원격의료·로봇·드론 등의 신기술을 기업들이 제약 없이 상용화할 수 있는 ‘규제 제로 특례’를 적용해 첨단산업 실험장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개발 이익 환수 및 재투자 의무 조항의 추가 완화도 검토해볼 만하다. 기업도시개발법상 지역의 ‘낙후도’ 평가 조항 등을 손질해야 기존 도시 인근에서도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돼 기업들이 관심을 보일 것이다. 기업도시를 활성화하면 현 정부가 당면한 지방 소멸 문제와 서울 집값 급등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결국 기업 중심의 ‘민간 주도 성장’에 경제문제의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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