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라인네트워크에서 스타트업을 리뷰합니다. 줄여서 ‘바스리’. 투자시장이 얼어붙어도 뛰어난 기술력과 반짝이는 아이디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스타트업은 계속해 탄생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이들을 바이라인의 기자들이 만나봤습니다.
뇌출혈은 발병 후 한달 이내 사망률이 높고, 골든타임이 매우 중요한 중증 응급 질환이다. 뇌출혈은 컴퓨터단층촬영(CT)을 통해 진단을 할 수 있는데, 전문의가 아닌 이상 육안으로 판단하기 어려워 자칫하면 병변을 잡아내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퍼플AI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뇌출혈을 포함한 뇌경색, 뇌동맥의 병변을 잡아내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대표 솔루션인 뇌출혈AI는 뇌 CT영상을 수 초 내로 분석해 출혈 위치, 이상 여부를 의료진에게 알린다. 임상 실증 연구를 통해 98%의 정확도로 의료진이 놓치기 쉬운 미세한 출혈을 탐지하고, 응급실 진료 시간을 단축한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퍼플AI가 솔루션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뇌질환 관련 의료 데이터를 대규모로 학습했기 때문이다. 뇌질환 데이터는 다른 의료 데이터 대비 가격이 비싸고 이를 활용, 해석하는데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퍼플AI는 SK C&C의 인공지능(AI) 헬스케어 팀으로 시작해 스핀오프한 만큼, 비싼 의료 데이터를 구매해 학습할 수 있었다. 여기에 영상의학과 교수진이 공동 창업자로 합류하면서 전문성을 높였다.
퍼플AI는 SK C&C에서 AI헬스케어 팀장을 맡은 박병준 대표와 SK C&C에서 비전 AI기술위원을 역임한 나훈 최고기술책임자(CTO), 여기에 윤태진 서울대학교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최진욱 아주대학교병원 영상의학과 교수가 공동 창업했다. 현재 퍼플AI는 SK C&C와 지분 관계가 없는 별도 기업이다.
퍼플AI의 대표 솔루션은 뇌출혈AI이며, 이외에도 뇌경색AI, 뇌동맥AI을 개발했다. 퍼플AI의 뇌출혈AI 솔루션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허가를 받았으며, 보건복지부의 혁신의료기술에 지정됐다. 또 미국 식품의약품청(FDA)의 허가를 받은 만큼 기술력이 입증됐다고 자신한다.
퍼플AI는 왜 뇌질환 솔루션을 개발한 것일까. 그리고 어떤 기술적 특징을 가졌을까. 지난달 27일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박병준 퍼플AI 대표(=사진)를 만나 뇌질환AI 시장, 그리고 회사의 AI 솔루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본인 소개를 해달라
기존에 SK C&C에서 20년 간 전략기획, 사업기획 개발 조직에서 근무했다. 그러다 2019년 SK C&C에서 신규 사업으로 헬스케어 조직을 새로 만들었는데, 평소 관심이 있던 분야이기도 하고 생명과학을 전공한 만큼 자원해서 팀장을 맡았다. SK C&C에서 여러 신사업 중에서 의료 AI 소프트웨어 사업을 가능성 있게 보면서, 스핀오프를 하게 됐다.
-퍼플AI는 지금 어떤 서비스를 만들고 있나
뇌출혈, 뇌경색 등의 뇌질환 영상 진료 보조 AI소프트웨어다. 식약처, 미국 FDA의 허가를 받았으며 보건복지부의 혁신의료기술에 지정됐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뇌출혈은 사망률이 높은 질환이다. 1년에 환자 수가 10만명 정도 생기는데, 이 중 절반 정도가 한 달 이내 사망을 한다는 통계가 있다. 골든타임이 세시간밖에 안되어 빠르고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뇌출혈은 어떻게 진단을 하나
보통 CT를 찍어 영상을 본다. 그러나 영상의학 전문의가 24시간 대응을 하기 어렵다. 결국 부정확한 진단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퍼플AI는 이를 돕기 위해 서비스를 만들었다.

의료진은 의료 영상 시스템에서 CT를 촬영한 환자의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저희 서비스를 활용하면 CT 촬영 후 분석을 통해 빨강, 주황, 초록 등 7가지 색으로 뇌출혈 가능성이 높거나 낮은 환자들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의료진은 빠르게 진단해야 할 환자를 선별할 수 있다.
의료진이 시스템에서 환자 한 명을 선택하면, CT원본 영상과 퍼플AI가 분석한 영상이 나온다. CT원본에서 출혈 가능성이 높은 부위를 퍼플AI가 표시해준다. 의료진은 놓칠 수 있었던 출혈 부위를 더블체크할 수 있다.
-정확도는 얼마나 되나?
자체 정확도는 약 98% 정도 나온다. 환자를 환자로 볼 수 있는 확률은 98.5%고, 정상을 정상으로 볼 확률이 96%다. 임상시험을 통해 의료진이 퍼플AI의 뇌출혈 솔루션을 활용한 결과, 뇌출혈을 잡아낸 정확도가 97%로 솔루션을 활용하지 않았을 때(94.7%)보다 정확도가 향상됐다.
또 9명의 의료진이 테스트를 했는데, 그 중 세 명이 영상의학 전문의가 아닌 다른 과 전문의였다. 결국 응급실 당직을 서는 다른 과 전문의들이 뇌출혈을 진달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기존 의료AI는 병변 부위를 중심으로 학습을 한다면, 퍼플AI는 뇌출혈이 아닌 정상인 사례 또한 학습해 비정상을 검출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즉, 정상 사례 학습을 통해 예외일 경우를 줄였다. 학습되지 않은 데이터도 병변 여부를 판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존에 나온 솔루션은 약 500명에서 1000명 정도의 데이터를 학습했다면, 퍼플AI의 솔루션은 3000명 이상의 데이터를 학습, 활용했다.
결국 퍼플AI의 특장점으로, 어느 병원에서 저희 솔루션을 도입하든 정확도가 일정한 편이다. 퍼플AI는 데이터 학습에 활용하지 않은 6개 기관의 환자 5만명의 데이터로 정확도를 비교했는데, 약 98%의 정확도가 나왔다.
-결국 데이터 학습량이 중요한 것 같은데, 데이터는 어디서 가져오나
제휴 병원의 윤리 심의위원회를 거쳐 데이터를 사온다.
-AI 솔루션을 도입하고 싶어하는 병원의 수요는 얼마나 되나
스핀오프하기 전, 40개 병원에 저희 솔루션을 적용, 테스트했었다. 병원 입장에선 AI솔루션 활용을 통해 진료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수도권에 있는 한 대학병원의 경우 응급실에 방문한 환자 가운데 뇌출혈을 잡아내지 못한 환자 비율이 4.6%였다. 해당 병원이 약 7개월 간 퍼플AI의 솔루션을 도입한 결과 해당 비율이 3%로 줄었다.
뇌출혈은 발병 세시간 이내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퍼플AI의 솔루션을 활용하면 뇌출혈 진료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치료 효과가 높아지는 이점이 있다.
-기존에는 뇌출혈 진료 시간이 얼마나 됐나
환자가 CT영상을 찍고 신경외과에서 조치를 받기까지 평균적으로 26.8분이 걸린다. CT 촬영하는데 약 2~3분 정도 소요되고, 의사가 진단하는데 3~4분 정도 걸린다. 이 사이 다른 환자의 진료를 보면서 약 30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곤 한다. 반면, 퍼플AI의 솔루션을 활용하면 곧바로 분석 내용을 알 수 있어 진단 시간이 11분으로 줄어든다.
-뇌출혈AI의 경우 미 FDA의 승인을 받았는데 지금 미국에서 상용화가 됐나
상용화가 가능한 상황이지만, 아직 매출을 일으킬 고객은 없다. 작년 10월 회사를 설립, 그 전까지 SK C&C에서 인허가 등을 이관하는 작업을 하면서 미국 정식 판매를 시작하지 못했다. 현재 미국 유통 파트너사를 찾고 있는데, 상반기 중 계약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에서 개념검증(PoC)을 하고 있는 곳이 있나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의료AI가 올라가는 플랫폼이 있는데, 이러한 플랫폼 회사와 도입 논의를 하고 있다.
-뇌출혈AI가 핵심 제품인데, 도입 고객 확대 계획은 어떻게 되나
국내의 경우 유관 학회와 연구 등을 하면서 각 지역 거점 병원에 확산을 해나갈 계획이다. 판매 대리점망을 구축하고 있다. 현재 국내 병원 약 10%가 퍼플AI의 뇌출혈AI를 도입했는데, 향후 1~2년 내 이 비율을 50%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앞서 언급했듯 글로벌은 미국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의료 데이터를 클라우드 플랫폼에 올릴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구글 플레이스토어 같은 병원에서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에 서비스를 올리기 위해 MS 등 플랫폼 기업의 검증을 받고 있다. 해당 플랫폼에 올라가려면 또 검증을 받아야 하는데 그 기간이 몇 개월 소요된다.
-뇌경색AI 솔루션의 정확도는 어떤가
현재 정확도를 높이고 있는 단계다. 뇌경색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CT촬영을 한 뒤 정밀 진단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해야 한다.
퍼플AI는 CT촬영 영상을 통해 뇌경색을 잡아낼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CT는 촬영 후 약 2~3분 내로 결과가 나오고, MRI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약 2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급성 뇌경색 환자의 경우 CT를 통해 바로 판독을 해야 하는데, CT에서는 뇌경색을 잡기 어려워 빠른 진단에 도움을 주고자 솔루션을 개발했다.
현재 뇌경색AI 솔루션의 경우 평균 약 80% 이상의 정확도를 보인다. 정확도를 높이는 작업을 올해 진행할 계획이다.
-국내에서 퍼플AI 솔루션을 쓰려면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서버에 직접 설치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 보통 현장에서 직접 설치하거나 온프레미스로 설치를 한다. 또 병원 내부망에서 활용을 하더라도, 환자에게 사용 동의를 받는다.
-의료계에서 AI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보는지
의료AI 중 가장 기술이 성숙된 분야가 영상진단AI라고 생각한다. 영상의학학회에 가도 절반 가까이가 AI에 대한 논문 발표, 관련 기업 전시 부스 등으로 구성된 만큼, 영상의학 부문에서는 AI에 대한 수용도가 많이 올라왔다.
-얼마 전 뮤렉스파트너스, 빅베이슨캐피탈, 매쉬업벤처스,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DHP) 등으로부터 25억원 규모의 프리A 시리즈 투자를 받았다고. 투자자들이 본 투자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퍼플AI는 솔루션 개발 과정에서 병원 의사 인터뷰를 많이 진행 했다. 현재 AI 솔루션 기업이 의료계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 요인이 된 것 같다.
또 뇌질환 솔루션의 성장성이 크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가능성을 본 것 같다. 뇌질환 시장은 데이터 구매 비용이 비싸다는 점에서 다른 질환 대비 경쟁자가 많지 않다. 뇌질환 솔루션 개발을 위해 CT, MRI 데이터를 많이 활용해야 하는데 해당 데이터는 일반 엑스레이 데이터 대비 가격이 10배 이상 비싸다. 또 이런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인력이 많지 않아 기술적 난이도가 있는 편이다.
-투자금은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지
미국시장 진출을 위해 투자금을 활용할 계획이다. 국내 시장에선 대리점망 구축, 마케팅 등에 투자금을 쓸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궁금했던 점인데, 퍼플AI 사명 뜻이 무엇인지
퍼플(Purple)이 전문적이고 신뢰가 있다는 의미로 여기에 AI를 붙였다. 의료AI 기업이지만 의학 느낌을 주는 사명은 피하고 싶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홍하나 기자>0626hhn@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