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이틀간 안산에서 공연된 여성국극 ‘화인뎐’은 20대, 30대 여성 관객이 객석을 채웠다. 인터파크 예매자 중 여성이 97.5%, 20대, 30대가 75.5%나 됐다. 최근 화제성 1위 tvN 주말드라마 ‘정년이’ 인기 덕이 크다.
1950년대 오직 여성 명창·배우가 뭉쳐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여성 국악 연극, 이른바 여성국극을 소재로 동명 웹툰(2019)을 옮긴 드라마다. 배우 김태리가 서울의 국극단 연습생이 된 정년이를 연기했다. 낙랑공주부터 호동왕자, 악질 사또까지 남장 여자가 연기해, 팬들의 혈서, 선물공세가 밀려들었다는 실제 국극 역사를 되살렸다.
여성국극의 자취를 좇은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2011·사진)에 따르면 당시 인기 있는 남역 배우들은 소녀 팬들 부탁으로 신랑 분장을 하고 가상 결혼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단다. 1950년대 원조 아이돌인 셈이다.
시대를 풍미한 여성국극은 왜 잊혀져 왔을까. 다큐는 1960년대 문화예술분야 정부 지원이 남성 중심으로 조직되며 “여자끼리 하니까 안 된다”는 괄시 속에 여성국극을 배척한 정황도 다룬다. 결혼, 자녀양육에 의한 경력단절, 사업부서 직원들이 극단원에 돌아갈 흥행수입을 빼돌린 일도 다반사였다. 임춘앵 같은 당대 최고 배우조차 무대를 잃고 쓸쓸히 생을 마감했던 배경이다.
남성들의 예술판에 파란을 일으켰던 여성국극은 지난해 동명 창극으로도 나온 ‘정년이’를 계기로 재기의 날개를 폈다. 지난해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이 여성국극제작소를 상주단체로 지정하며 70여 년만에 처음 제도권 안에서 인정받았다.
모처럼의 관심이 현실판 정년이들을 부활시킬 수 있을까. 대중의 관람 응원만큼 지난날의 패착을 살피고 개선하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