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전 세계는 미세플라스틱의 공포에 빠진 듯하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2018년 겨울, 저녁 메뉴로 김치찌개를 만들기 위해 마트에서 익은 김치를 사 왔다. 가위로 포장지를 오렸을 때, 가위의 양날 끝에서 고춧가루가 아닌 이상한 물체가 보였다. 손끝을 대니 까칠까칠한 조각들이 만져졌다. 내가 아는 그것? 머리카락이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뒷면을 보니 포장지의 소재는 폴리에틸렌이었다. 갓 담근 김치가 매장에서 익어가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하루에 몇 개나 먹었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먹었을까? 온갖 추측과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로부터 3년 후,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다랑쉬 오름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끽한 후 내려오는데 남편이 낀 장갑에 다닥다닥 붙은 흰 입자들이 보였다. 등산객들의 낙상을 막기 위해 설치해 둔 노끈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이었다. 인간에게 수명이 있듯 제품에도 수명이 있다. 플라스틱 제품도 예외는 아니며, 자외선과 마찰은 그 수명을 결정짓는 주된 요인이다. 맑고 투명했던 플라스틱 용기가 탁해진 것은 열화 및 산화에 의해 노화된 것이고, 세탁망에 걸러진 섬유 찌꺼기는 마찰에 의한 마모의 결과물이다. 녹슨 철이 쉽게 부서지듯, 노화된 플라스틱은 보다 쉽게 마모된다.
현실이 된 미세플라스틱 공포
치매·암은 물론 성장에도 영향
유럽 사회, 플라스틱 사용 자제
소비·생산 줄이는 게 유일 해법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 플라스틱

그렇다면, 미세플라스틱은 우리에게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일까? 우리는 그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미세플라스틱은 크게 1차와 2차로 분류된다. 제품 생산에 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생산된 1차 미세플라스틱은 그 특성에 대한 정보가 명확하기에 환경이나 건강에 대한 영향 또한 미리 점검하고 대응할 수 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 통하는 것이다. 반면, 사용 중에 또는 폐기된 후 제품이 마모되면서 만들어진 2차 미세플라스틱은 그 과정에서 노출된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환경에 따라 그 특성이 변화된다. 최근 발표된 역학조사 자료는 미세플라스틱이 면역계 교란은 물론 치매와 암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자녀의 성장 발달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플라스틱의 탁월한 흡착력과 미지의 마모 과정으로 인해 우리 몸에 들어온 2차 미세플라스틱의 특성은 조물주조차 예측할 수 없다. 적을 알 수 없기에 전략조차 짤 수 없는 것이다.
2차 미세플라스틱이 두려운 이유는 또 있다. 노출 농도는 독성을 결정하는 핵심 인자다. 플라스틱 생산량이 본격적으로 증가한 것은 1944년 미국 베이클라이트사가 폴리에틸렌비닐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 이후이며, 지금까지 생산된 양의 반 이상이 2000년 이후에 생산되었다. 당연히 환경과 인체에서 검출되는 미세플라스틱 양과 그로 인한 건강 피해는 시간이 갈수록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부드럽고 색상이 곱고 내구성이 강화된 플라스틱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업은 플라스틱 원료에 다양한 첨가제를 이용해야만 했다. 프탈레이트, 비스페놀-A, 과불화화합물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이들 첨가제는 현재 발암성 및 유전독성 물질로 분류되고 있다.
지난해 나는 유럽독성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덴마크를 방문했다. 놀랍게도 그곳엔 에어컨이 없었다. 호텔은 물론 음식점에서도 학회장에서도 에어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건물 외곽이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했다. 판매하는 생수 가격에 포함된 40%의 빈 병 보증금은 대중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이끌기에 충분했고, 학회장은 물론 일반 음식점에서도 플라스틱 용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길을 건널 때는 자동차보다 자전거 물결이 더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얼굴에서는 불편한 삶에 찌든 표정이 아닌 자연이라는 자산을 누리는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더는 미루거나 외면 말아야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Great pacific garbage path). 태평양 연안에 있는 국가들에서 흘러온 쓰레기가 쌓여 만든 쓰레기 더미다. 그 크기가 대한민국의 약 16배 정도이며, 그 대부분이 플라스틱이다. 엘렌 맥아더 재단은 해양 플라스틱 양이 2050년에는 바다의 물고기보다 더 많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위험이 감지되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모든 국가가 환경오염 문제를 정부의 최우선 정책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것은 아마도 그것이 경제발전과 대립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이 적극적인 동참을 꺼리는 것은 감내해야 할 불편함이 막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미루거나 외면할 수만은 없다. 소탐대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손실을 본다. 지구에서 생산된 제품은 지구에 버려질 수밖에 없으며, 쓰레기로 병든 지구에서 우리의 건강은 유지될 수 없다. 국민의 절제된 소비와 기업의 자율적인 생산량 감축만이 미래 세대에게 지구라는 자산을 안전하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물론, 절약하며 모은 꽉 찬 통장은 덤이 될 것이다. 정부는 열분해 방식을 플라스틱 쓰레기 처리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고려하고 있다. 플라스틱 구성 성분의 99%는 원유에서 유래하기에 합리적인 대안임이 틀림없다. 반면, 열분해 공정 후 생산되는 부산물은 원유의 연소산물과 유사한 성격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다. 환경과 건강에 대한 부산물의 영향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우선된다면 국민은 안심하고 정부의 정책을 지지할 것이다.
박은정 경희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