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김종태 기자)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이 전두환 정권 시절 일본법을 모델로 제정된 이래 대기업을 규제하며 경제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전문가 지적이 제기됐다.
15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최승재 세종대 법학부 교수는 최근 대한상의 정책 제안서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성장'에 기고한 글을 통해 공정거래법이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일본의 사적독점금지법을 모델로 제정됐다고 밝혔다.
사적독점금지법은 1945년 일본 패망 이후 미국에 진주한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일본의 전쟁범죄가 일본 재벌에 의해 벌어졌다고 판단하고, 일본 재벌을 해체하기 위해 미국의 반독점법을 모델로 삼아 제정한 법이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이런 일본법을 따라 한국의 재벌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법제를 만들었고, 이후 공정거래법은 한국 대기업 그룹을 규제하고 처벌하는 법으로 작용해왔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는 전범 국가가 아니고 경제 성장을 위해 국가를 대표하는 기업들을 육성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며 "일본법을 가져오면서 왜 이런 규율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입법 근거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한국 재벌도 같은 규제를 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과 제도가 본래 취지를 잃고 성장의 걸림돌이 된다면 과감히 재정비해야 한다"며 공정거래법상 동일인 규제의 폐지 필요성을 제기했다.
동일인 지정 제도는 자산이 일정 규모 이상인 기업의 총수를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두고 각종 자료·공시의무를 부과하고 형사책임을 묻는 제도를 말한다.
창업주 개인이 순환출자형 또는 피라미드형 기업집단 형태로 기업을 운영하며 이를 경영권 승계에 악용하는 등 폐해가 이어지자 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됐다.
최 교수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가 혈연을 중심으로 가문 체제를 유지하고 있을 때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점차 매우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이들 사이에도 경영권 분쟁이 생김에 따라 종래의 혈연 중심 체제가 유지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짚었다.
개선을 위해서는 지주회사 구조의 기업집단의 경우 지배를 목적으로 하는 지주회사(법인)를 원칙적으로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한편, 혈연관계가 아니라 실질적 영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동일인 규제 외에도 공정거래법상 대표적 규제로서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도 개선돼야 한다고 최 교수는 주장했다.
현재 공정거래법은 자산총액 10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이 보유한 국내 계열회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WGI)에서 한국의 기부지수 순위는 2013년 45위에서 2023년 79위로 지난 10년간 하락세다.
최 교수는 "한국의 기부 문화가 활성화하지 못한 것은 공익법인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주요 원인"이라며 "공정거래법을 통해 공익법인을 규제하는 대신 외부감사나 조세 혜택에 대한 관리 감독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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