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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가 지난해 중단했던 건설사 사망사고 명단 공개를 다시 추진한다.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명단 공개를 중단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정책을 뒤집은 것이다. 이에 건설업계는 “정부가 기업을 압박하며 책임을 떠넘긴다”며 반발하는 반면, 노동계와 소비자들은 “기업의 안전 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조치”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 명단 공개 다시 추진… 법적 근거 마련
국토부는 이달 초 ‘건설기술진흥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며 건설사 사망사고 명단 공개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명단 공개를 통해 건설사의 경각심을 높이고 사망사고 예방 효과를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2019년부터 시공능력평가 상위 100대 건설사의 사망사고 현황을 공개해왔다. 2020년부터는 발주청과 지방자치단체, 2021년부터는 하도급 업체까지 공개 대상에 포함하며 점차 확대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건설업계의 반발과 법적 근거 부족 문제로 돌연 명단 공개를 중단했다.
국토부가 밝힌 ‘규제영향분석서’에 따르면 매년 200명 이상의 노동자가 건설 현장에서 사망하고 있으며, 이 중 약 25%가 시공능력평가 100대 건설사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건설사의 안전 관리 책임을 강화하고 사망사고 예방 효과를 높이기 위해 명단 공개를 재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건설업계 “기업 낙인찍기… 실질적 대책 필요”
그러나 건설업계는 정부의 명단 공개 재추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사망사고는 개별적인 원인이 있는데 단순히 숫자로 기업을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정부가 법적 근거도 없이 기업을 공개 망신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보여주기식 규제보다 실질적인 사고 예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안전 시설 투자 지원이나 제도 개선 없이 명단만 공개하는 것은 사고 방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상위 20대 건설사의 사고 사상자는 1868명으로 전년(2259명) 대비 17.3% 감소했지만, 사망자는 25명에서 35명으로 25% 증가했다. 건설업계는 “명단 공개만으로는 사고 예방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정책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 노동계·소비자 “책임 있는 기업 문화 정착해야”
반면 노동계와 소비자들은 건설사 명단 공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노동단체 관계자는 “건설 현장에서 매년 200명 이상이 사망하는데도 기업들은 안전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며 “명단 공개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들도 같은 입장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건설사는 국민의 생활 공간을 짓는 기업인 만큼 안전 관리에 더욱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며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건설사는 브랜드 이미지 하락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 국토부, 벌점 공개 등 추가 대책도 검토
국토부는 명단 공개 외에도 건설사별 벌점 공개, 고용노동부의 관련 통계 활용 등 추가적인 안전 관리 강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를 통해 건설사별 사망사고 발생 현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건설사의 안전 관리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업계도 사고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명단 공개 정책이 실질적인 사고 예방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논란이 될 전망이다. 건설업계와 정부 간 갈등이 불가피한 가운데, 이번 정책이 건설 현장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