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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성능’을 높이는 하나의 축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 성능과 함께 ‘비용’이라는 또 다른 축이 있다. 벡터(Vector)로 표현하면 성능 벡터와 비용 벡터의 상호작용 속에 진화의 방향성이 결정된다는 이야기다. 인류가 더 먼 곳에 가서 많은 먹이를 찾기 위해 사족 보행이 아닌 이족 보행으로 진화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더 많은 먹이를 찾는 것을 ‘높은 성능’, 이족 보행을 ‘적은 비용’으로 해석한다면 말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새싹기업) ‘딥시크(DeepSeek)’ 충격도 자연스러운 진화의 과정 중 하나다. 초거대 생성형 AI 모델이 천문학적인 비용에도 성능 경쟁으로 질주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적은 비용으로 비슷한 성능을 보이는 모델의 등장은 전혀 이상해할 것도 없다. 가성비 경쟁은 AI 분야도 예외일 수 없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AI 가성비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AI 확산이 급속히 전개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딥시크 충격 자체가 아니라 AI의 진화 흐름을 탈 준비가 돼 있느냐다.
무엇보다 AI 에이전트의 대중화가 앞당겨질 것이다. 농업으로 말하면 농부마다 개인 AI 비서가 생겨난다는 뜻이다. 영화 ‘아이언맨’을 본 사람은 기억할 것이다. ‘자비스’라는 AI 시스템이 아이언맨 곁에 있으면서 요구 사항을 즉각 해결해주는 장면 말이다. 자비스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문제는 모든 농부가 AI 비서를 거느릴 수 없다는 데 있다. AI와 소통할 수 있는 농부라야 가능하다. AI와 소통을 잘하는 농부는 사람으로 치면 1명의 AI 비서가 아니라 10명, 20명의 비서를 둘 수도 있다. 생산성을 10배, 20배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한국은 AI와 협업할 수 있는 농부가 얼마나 있느냐는 것이다. 다르게 질문하면 AI와 협업이 가능한 청년이 얼마나 미래의 농부가 되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농부와 AI의 협업 관점에서 보면 최근 청년농업인을 위한 후계농 육성자금 지원 중단 사태와 이에 따른 갈등 확산이 안타깝다. 정부가 육성하겠다는 청년농 3만명을 AI와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는 미래 농부 3만명으로 인식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고령화나 지역 소멸로 농부가 사라질 것이라고 걱정하지만, 그에 앞서 AI를 활용하지 못하는 농부가 사라질 것을 먼저 걱정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언제까지 농업재해보상금으로 대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AI 스마트팜 등 미래농업을 준비하고 이끌어갈 미래 농부를 길러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AI와 협업할 수 있는 청년농 지원은 미래농업을 위한 투자다. 그들이 AI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가성비를 높일 수 있도록 농업 AI 기술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법과 제도의 개혁도 필요하다. 농지의 집적화가 AI 활용의 가성비를 더욱 높일 것은 자명하다. 정부와 국회는 집적화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모조리 걷어내야 한다. 모래 놀이터에서 장난하는 규제샌드박스 정도로는 미래농업에서 한국의 자리를 담보할 수 없다.
AI가 농부를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AI를 활용하는 농부가 AI를 활용하지 않는 농부를 대체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AI로 무장한 청년농이 곧 미래농업의 전사(戰士)다.
안현실 울산과학기술원 연구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