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만 해도 한국인 대부분은 농민의 자식이었다. 부모가 농민이 아니어도 조부모가 농민이 아닌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농촌·농민과의 연결이 옅어졌거나 끊어졌다. 밥과 채소를 먹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그 식재료가 농촌에서 온다는 실감을 잃어버린 이들이 많다.
경향신문이 지난 한 달간 ‘남태령을 넘어’ 기획 기사를 8회에 걸쳐 연재했다. 이 기사들은 20~30대 여성 기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농촌에서 한달살이 등 현장 취재를 통해 기록한, 포괄적이고 사실적인 2025년 농촌 보고서이다. 농촌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더 심각하며, 의료와 교육 같은 공공재를 누리기도 더 힘들어졌다. 농민들은 기후변화 영향으로 농산물값 폭등·폭락이 심해지며 유통업자에게 주도권을 점점 더 내줬으며, 외국인 이주노동자 없이는 농사를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도시민의 안락한 삶을 위해 송전선과 쓰레기 매립장·소각장 같은 혐오시설을 떠안으며 농촌 환경과 공동체가 파괴됐다.
이렇듯 절망적 현실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농촌에 남거나 귀촌하는 청년들이 꾸준히 있다. 마지막회 영월 ‘삼돌이 마을’ 사례는 ‘박힌 돌(원주민), 굴러온 돌(귀촌인), 굴러올 돌(예비 귀촌인)’이 함께 사는 마을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준다. 이 얘기는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사라진 읍면 주민자치권을 되살릴 필요성을 일깨운다. 읍면 주민이 자기 지역의 주거·의료·교육·돌봄·교통·문화·환경 등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게 한다면 농촌의 활력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해도 산업화, 농산물 시장 개방 이후 ‘중력의 법칙’처럼 작용해온 ‘농촌 식민지화’를 거스르기에는 힘이 든다. 절실한 것은 도시민들이 농촌과의 연결끈을 회복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21일 밤 ‘남태령 대첩’이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진보진영 내에는 지역 불균형 문제의 해법으로 ‘메가시티’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하지만 농촌의 흙에 발 디딘 채 문제를 바라본다면 전국에 서울 같은 대도시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